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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태은행「갱」…고객 납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북적 대표단이 도착하던 지난 12일, 한 낮의 서울 도심지에서 일어난 국민은행 가현동 지점 예금주 이정수씨(38) 피납 사건은 이제까지 은행주변에서 발생한 여느 범죄보다도 그 수법이 고도로 지능적이고 계획적이면서도 놀랄 만큼 대담했다. 순간적인 범행은 흡사 영화의 한 장면에서 보는 갱사건 같았다. 또한 지난 7월27일 상업은행 용산 지점에서 학교공금 55만 원을 찾아 나오던 상명국교 고용원 김영근씨(52) 피납 사건 후 47일만에 똑같은 수법으로 저질러진 점으로 미루어 동일범의 제2범행으로 보여지고있다.
이 사건은 애초 총기오발사고로 신고되었다. 지난 12일 상오11시20분쯤 북적 대표단 입경 연도경비를 위해 박석고개 일대에 배치되었던 마포경찰서 수사요원들이 현장에 도착한 것은 1시간 뒤.
현장에서는 깨어진 차창유리파편과 탄알 2개를 수거했을 뿐 수사에 도움이 될만한 유루품은 없었다. 오히려 현장출동의 지연으로 범인들의 도주로 차단이나 차량수배만이 늦어져 초등수사는 처음부터 실패였다.
또 제3현장의 목격자가 없다는 점, 범인들이 기동력을 갖고있다는 점등이 수사상 애로로 지적되고있다.
마포경찰서에 수사본부를 차린 경찰은 17일까지 용의차량의 수사를 위해 서울시내와 도계 일대의 정비공장·주차장·세차장·매매소·부속상 등 1백52군데를 탐문했으나 단서가 될만한 것은 하나도 잡지 못했다.
제1현장의 목격자 임광희씨(36·마포구 아현동 544)와 제2현장의 김대수씨(52·마포구 공덕동 l50의3)등 목격자들의 진술을 종합하면 범인들의 차량은 70년형 흑색「코티나」로 71년 중에 제작된 신품. 현대자동차 판매주식회사에서 밝힌 바로는 총 판매대수 9천2백70대로 영업용 2천7백6대, 자가용·관용이 6천5백84대.
자가용·관용 가운데 흑색은 7백1대로 범행에 사용한 서울 관1-1547호「코티나」와 대조결과 차량대장에는 없는 무적 차로 밝혀졌다.
경찰은 범인들의 차가 공기호·사기호를 변조한 장물차량이거나 등록이 말소된 차를 구입, 사용한 것으로 보고 17일 68년∼71년 사이에 말소된 3백29대의「코티나」와 도난 당한 서울 자1-4597호 등 6대의 차량소재수사에 나섰다.
무엇보다 수사진을 가장 긴장시키고 있는 것은 납치 5일이 지나도록 생사여부가 감감한 이정수씨.
사건이 보도된 뒤 10여건의 변사신고가 들어왔으나 피납자 이씨가 아니었고 16, 17일 양일간의 주말에 근교 등산객들로부터 변시체발견 혹은 유기한 차량의 신고가 있을 것을 기대하고 있는 수사본부는 16일 1천1백15개 지역 통장회의를 소집, 이씨의 사진을 배부, 수사협조를 의뢰했다.
이씨의 생사에 대해 한 수사간부는 ①이씨의 성미가 괄괄하고 힘이 센 편으로 범인들과 계속 격투를 했을 것이며 ②범인들이 쏜 총알은 3발로, 현장에서 2발만을 수거, 3발 째가 이씨에게 맞았을 가능성이 있고 ③이 경우 범인들은 이씨를 하수구· 저수지· 모래사장·숲속 등에 암장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한편 이정수씨의 부인 정은실씨(36)는 6일째 남편소식이 없자 경찰수사를 기다리다 못해 17일 무당을 불러 굿을 하며 남편의 생사와 행방을 점치기도 했다.
납치된 이씨는 부인 정씨와 2남1녀, 노모 조상선씨(58), 동생 등 9식구를 부양하는 가장. 겨울에는 털실을, 봄·가을에는 마늘장사를 하여 생계를 유지해왔다. 납치되던 12일에는 상오10시30분쯤『대구에 마늘대금을 송금해야한다』며 집을 나섰다는 것
성미가 급하고 남에게 굽힐 줄 모르며 고향인 경남합천에서는 힘센 장사로 소문나 있다. 사건당일 이씨가 입고 나간 옷은 회색바지에「베이지」색「잠바」, 자색구두를 신고있었으며 돈은 푸른색 무늬바탕에 『국민은행』 이라고 붉게 인쇄된 포장지에 싸가지고 나왔다.
한편 지난 7월27일 용산에서 납치되었던 김영근씨에 따르면 범인들 중 경찰여름복장을 한자가 접근, 『영감님, 상명학교에서 오셨죠. 위험하니 차로 모셔다 드리죠』하며 차안으로 끌고 들어간 뒤 두 손을「시트」뒤로 틀어「나일론」끈으로 묶었다는 것이다.
그들은 김씨의 안경을 벗겨 시력이 약한 김씨에게 지리를 어둡게 했고 도중에 수없이 구타, 실신시켰다는 것이다.
또 김씨가 결박되었던 경기도 광주군 돌마면 분당리 태제고개는 대낮에도 인적이 드문 산골로 만일 이씨가 같은 경우를 당해도 사람에 발견되지 못한다면 그대로 아사할 수도 있는 것이다.
경찰은 18일 경기·강원도경의 협조로 도계의 야산과 지방도·농로변 1백m이내의 차량유기장소 및 시체은폐용의장소 수색에 나서는 한편 범인의「몽타지」6만장을 돌려 수사중이다. 【고정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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