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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시론

왜곡 교과서 '불채택 운동' 펴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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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예상했던 대로 일본의 '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새역모)'이 집필한 후소샤 교과서가 개악된 상태로 검인정을 통과했다. 일본 문부과학성은 이 교과서를 통과시키는 데 시종 협조적이었으며 오히려 유도하는 역할을 해왔다. 특히 전임 문부상은 2004년 직접 새역모 집회에 참석해 동조연설까지 했으며 자민당과 재계 역시 적극 협조해 왔다. 따라서 후소샤 교과서는 현재 일본 주도세력의 역사인식을 집대성한 것으로 봐도 틀림없다.

이 교과서는 '영광의 일본사'를 위해 한국의 역사를 타율과 종속성을 지닌 것으로 평가하면서 식민지화를 정당화하고 식민지배를 미화하는 한편, 태평양전쟁의 침략행위를 아시아 민족 해방을 위한 것으로 합리화하면서 오히려 일본의 전쟁 피해를 극대화해 피해자로서의 이미지를 도출해 내고 있다. 결국 이번 교과서는 2001년판을 오히려 교묘하게 개악한 것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한편 독도 관련 서술도 공민교과서를 통해 개악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다. 2001년 후소샤 하나에 국한돼 있던 것에서 벗어나 가장 높은 채택률을 보이고 있는 도쿄서적과 오사카서적까지 가세하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후소샤의 경우 신청본에서는 영유권 대립 정도로 서술돼 있었으나 최종본에서는 한걸음 나아가 한국이 불법 점거하고 있다는 서술로 바뀌었다.

개악된 형태로 재생산된 이들의 교과서 도발에는 일본 주도세력의 일본의 미래에 대한 비전이 담겨 있다. 그들의 목표는 평화헌법체제를 개정해 '전쟁을 할 수 있는 나라 일본'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그들 표현대로 '역사교육의 문제는 헌법 개정, 교육기본법 개정의 문제와 표리일체의 관계에 있는 중요 과제'인 것이다.

'학설 상황에 비춰 명백한 오류라고 할 수 없으며 제도상 정정을 요구할 수 없음'으로 대부분 일관하고 있는 일본 정부의 태도로 미뤄 후소샤 교과서의 검정 통과는 예견된 것이었고 이제 남은 것은 이 교과서가 일본의 교육현장에서 사용되지 않도록 막는 것이다. 물론 우리 정부 차원에서 강력한 항의의 메시지가 전달돼야 하지만 그동안 꾸준히 이 문제를 연구해 온 학계와 시민단체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지원하는 데 주력하는 것이 더 바람직하다.

2001년 후소샤 교과서는 0.039%에 불과한 채택률로 3억 엔에 가까운 적자를 기록하는 참패를 겪었다. 당시 그들은 4년 뒤 10% 이상의 채택률을 기록해 '복수'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었다. 그리고 종교단체에 기대어 회원 배가 운동을 강화하면서 자신들의 교과서가 채택되기 쉽도록 교육 관련 조항을 개정해 왔으며 판형을 크게 하고 읽기 쉽게 고치는 치밀한 작업을 해왔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후소샤 교과서 불채택 운동의 주체는 일본의 양심적 시민사회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사실 2001년 그들이 참패한 데는 이들의 헌신적 활동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한국에서의 극단적 대응으로 오히려 일본의 우익세력이 득세하게 하는 결과를 초래하고 양심적 시민운동의 입지를 좁게 만드는 것을 피해야 한다.

그리고 올해가 '한.일 우정의 해'라는 점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국민 간의 교류를 확대, 저들의 공세가 한.일 간의 진정한 우정을 얼마나 방해하는 일인지를 알리는 노력도 필요하다. 아울러 실제로 교과서 채택을 결정하는 지방자치단체나 교육위원회를 대상으로 직접 방문활동을 벌이고 현지 언론과의 접촉 기회를 넓혀야 한다.

일본 교과서 논란은 한.일 간의 단순한 역사분쟁이 아니라 동아시아의 미래 평화와 안정, 궁극적으로 일본 시민사회의 미래와 직결되는 문제인 것이다. 결국 새역모와 그 지지세력은 또다시 일본의 군사 대국화를 통해 동아시아는 물론 세계를 전쟁으로 몰고 갈 위험한 세력이라는 점을 드러내는 것이 중요하다.

주진오 상명대 교수.한국근대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