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서 당한 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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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요 며칠째 일본의 주간 독매 지의 북한 찬양과 한국 모독 기사로 주변이 떠들썩하다. 나는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한 2주일 전 동경에서 겪었던 불쾌한 경험이 되살아난다.
나는 동경에서 길을 몰라 「택시」를 잡아탔다. 한참 가다가 앞자리의 운전사가 어디서 왔느냐고 묻기에 대한민국에서 왔다고 대답했더니, 자기는 해방 전에 우리나라에 산적이 있어 우리에게 관심이 많다고 한다. 그러면서 월남 파병·비상사태선포·8·3조치 등 커다란 사건들을 들먹이면서 운전사답지 않은 일가견의 「논평」을 늘어놓는다.
자기 생각엔 특히 월남전에 귀한 젊은 목숨을 희생시키는 것은 인도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월남전에서 그렇게 번 돈도 많은 부분이 결국은 일본으로 흘러 들어오니 한국은 「일시 보관소」밖에 더 되느냐는 것이다.
일개 「택시」운전사가 이런 말을 하다니? 자 이걸 어떻게 들어야 할 것인가? 우리나라의 해외 공보 활동은 도대체 어떻게 된 것인가?
아무튼, 그 자리에서는 그가 우리나라의 실정과 사실을 잘 몰라서 생긴 오해지 사실은 그렇지 않음을 설명해 주었다. 그러나 그는 내 이야기에 전적인 수긍을 보이지 않는 떠름한 반응이다. 사람의 태도 변용이 그렇게 쉽게 이루어질 수도 없는 일이나, 그렇다고 해서 그 일을 위해서 「택시」를 타고 앉아 이야기를 계속할 수도 없는 노릇이어서 차를 내렸다.
나는 「택시」를 내리고 나서도 그 일이 상기되는 순간이면 혼자 불쾌하고 분하고 슬펐다.
이번 독매지 사건으로 일본 기자를 쫓아내 버리니 그때 화가 조금은 풀린 것 같다.
그러나 아직도 속이 상하고 마음이 무겁다.
지금 독매사 대표가 정식으로 사과하고 특파원들이 쫓겨가지만, 이것은 문제의 완결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문제의 노출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말이다.
일본에 가본 사람이면 누구나 느끼는 일이지만 요즈음 일본인의 대한관 내지 태도는 불쾌하기 짝이 없다. 표현은 완곡하나 결코 긍정적이고 우호적인 것만이 아닌 지식인의 태도, 두 얼굴을 가지고 교활하게 양쪽 줄을 조종하는 정치인들의 조작, 그야말로 「이커노믹·애니멀」이외에 다른 것이 될 수 없는 일본 상인들의 약삭빠른 대북 추파. 우리는 어떻게 해서 이들의 머리 속을 씻어놓을 수 있을 것이며, 또 어떻게 하여 그들의 태도를 고쳐 놓을 수 있을까?
이번에 독매사의 서울 지국을 폐쇄하고 특파원에게 추방령을 내린 것으로 일이 끝났다고 생각해서는 큰 오산이다. 그들이 평양에다 지국을 설치할 속셈으로 편중된 아첨을 하는 것이라면 독매와 같은 일본 신문이 일본인의 대한 관에 부정적 역할을 할 뿐 아니라, 더 나아가서는 이러한 결과가 한반도의 평화를 깨고 새로운 긴장을 조성함으로써 어쩌면 6·25때와 같은 일석이조의 득을 꿈꿀지 모를 「포리·이커노믹·애니멀」의 그립자가 느껴지기도 해서 전율을 금할 수가 없다. <서봉연(서울대 문리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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