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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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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면보기

종합 01면

연도엔 시민들이 약속이나 한 듯이 몰려들었다. 태극기를 든 사람도 있었다. 「라디오」중계에선 연신 수다스러운 실황방송이 거침없이 쏟아져 나왔다. 『5천만민족…』, 『역사의 한 「페이지」』, 『역사적인 첫 발…』, 『민족의 염원…』-. 자동차의 행렬은 바람처럼 지나갔다. 박수를 치는 사람, 환호를 올리는 시민들도 있었다. TV실황의 한 「스냅」이다.
신문지엔 지도들이 소개되고 있다. 마치 추상화처럼 윤곽으로나 이어졌던 그 지도에 눈망울과 같은 지명들이 새겨져 있다. 예성강·남천·사리원·정주·중화·평양. 아득히 낯선 지명들. 지구의 저쪽, 「아프리카」의 어느 고장 같던 지명들이 하나 둘 눈을 뜨고있다.
일기예보도 있다. 전국의 일기개황때면 무슨 주문처럼 들리던 그 피안의 일기상황. 『26도의 쾌적한 초가을」오늘의 평양 날씨』-.
사람들은 저마다 흥분을 누르고 있는 것 같았다. 우리 대표단이 판문각에 들어가고도 40여분. 입북절차를 밟는 순간은 실로 숨이 막히는 것도 같았다. 그것은 마치 이국에라도 들어가는 장면 같았다. 그 자동거들이 움직이자 기어이 안도의 숨이 쉬어졌다.
그러나 역사의 지열은 이 「애드벌룬」같은 흥분을 어떻게 가눌지, 한편 불안하고 초조하다. 사람들은 왜 심난해 하고, 감상에 젖어 이처럼 서성거리는 것일까.
우리는 역사상 많은 흥분들을 경험한 일이 있다. 수없이 많은 웅변과 기?와 환호는 우리를 억누를 수 없이 흥분시켰었다. 그러나 오늘 먼 역사의 지구위에서 그 지나간 일들은 얼마나 많은 회오와 부끄러움과 허탈을 교훈하고 있는가.
생각해보면 우리들처럼 쉽게 흥분하고 열광하고 심난해하는 국민들도 없는 것 같다.해외에서 무슨 운동경기에 이기기만해도 벌써 「아나운서」의 목이 메고, 국민들은 눈물을 삼킨다. 어디 해외뿐이랴. 서울운동장의 경기가 마치 자신의 운명과 결판이라도 내는 듯이 마음을 술렁거린다.
정치도 마찬가지이다. 중대발표라도 있으면 전후를 분별할 겨를도 없이 민감한 반응에 사로잡힌다. 의사소통에 굶주린 탓이겠지만, 너무도 충격적인 일들로 일상을 보내고있는 국민들은 그만큼 심약해진 때문일까. 자못 우리는 감정의 「붐」속에 묻혀 사는 것 같다. 감정의 정치, 감정의 경제, 감정의 사회, 감정의 문화-. 「빌리·브란트」의 동독여행은 독일국민의 환호를 받았지만 국민의 이성은 그의 동방정책에 수시로 찬물을 끼얹어줬던 일들이 새삼 상기된다.
우리는 언제까지나 감정의 시민으로 머물러 있을 것인가. 먼 역사의 지구에 쉴 줄 아는 의연한 자세가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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