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다재다능의 사교형-「킬러닌」경 「프로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뮌헨23일AP동화】「에이버리·브런디지」씨의 후임으로 제6대 국제「올림픽」(IOC) 위원장에 선출된 「에이레」의 「킬러닌」경은 겉으론 무뚝뚝한 표정이지만 「파이프」담배를 즐겨 피우며 언제나 「유머」를 잃지 않는 사교적 인물이다.
「킬러닌」경은 경력도 비교적 다채로와 기자·작가·영화제작자 등의 일을 해왔는가 하면 사업에도 손을 뻗쳐 석유와 금융분야에서 성공을 거두었다. 「킬러닌」경이 처음 IOC 위원이 된 것은 1952년 「헬싱키·올림픽」때이며 1968년의 「멕시코·올림픽」에서는 3명의 부위원장 가운데 한사람으로 피선되어 오늘날에 이르렀다.
「에이레」NOC 위원장이기도 한 「킬러닌」경은 세계 각국의 왕자, 귀족, 거물들이 득실거리는 IOC 위원들 가운데에서 단연 중심적 역할을 해온 인물로 그가 이번 IOC 위원장에 뽑힌 것은 당연한 논리적 귀결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그는 IOC의 「아마추어리즘」해석에 있어 「브런디지」씨보다는 훨씬 진보적 견해를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므로 종전까지 보수적 색채가 짙었던 IOC에 신풍을 몰고 올 것으로 보인다.
「킬러닌」경은 1차 세계대전이 터지기 5일 전 1914년 여름 「런던」에서 한 귀족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의 조부는 「빅토리아」여왕으로부터 남작 칭호를 받은 「더블린」의 명문이었다. 다른 영국의 귀족들이 그렇듯이 「킬러닌」도 「이튼」과 「케임브리지」를 거쳐 「소르본」에서 수학했다. 하지만 청년 「킬러닌」은 다른 귀족의 자제와는 달리 검소한 생활을 했으며 신문기자로 생계를 꾸려나갔다.
「데일리·익스프레스」「선데이·디스패치」지의 기자생활을 하면서 1936년에는 「에드워드」8세의 사저가 있는 「포트벨브데르」에서 3주간이나 밤을 새우며 취재, 저 유명한「블랙·프린스」(에드워드 8세의 별칭) 퇴위 사건의 특종을 캐내기도 했다.
다음해인 1937년에는 중국·일본 전쟁을 취재하기 위해 중국에 특파되었고 2차대전이 발발하자 영국군에 소령으로 자원 입대, 혁혁한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
그런 경력 때문인지 IOC 부위원장으로 있을 때는 기자들에 대한 「브리핑」에 남다른 솜씨를 보였다.
「케임브리지」대학시절 「아마추어「복싱」선수였던 「킬러닌」경은 승마와 경조에도 뛰어난 재질을 갖고 있다.
그는 취미도 다양해서 「에이레」의 유물에 조예가 깊은가 하면 영화에도 손을 대 「존·포드」와 함께 「에바·가드너」「그레이스·켈리」출연의 『모감보』를 감독했다.
「골프」광이기도 한 그는 1962년 아들에게 「골프」를 배워 주다가 아들이 휘두른 「골프」채에 머리를 맞아 20바늘을 꿰맨 일도 있다.
만능 스포츠맨이면서 한번도 「올림픽」에 출전하지 않았던 「킬러닌」경은 슬하에 3남1녀를 두고 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