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이의 정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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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아이들이 학교에서 돌아와 좀 빈둥거리면, 『왜 공부 안 하니.』 『숙제 다했는걸.』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왜 공부하지 않고 그림은 무슨 그림이냐.』 『이게 숙제란 말야.』
좀 큰소리로 노래를 부르면, 『시끄럽다, 조용히 공부나 해.』 『낼 노래 시험인걸.』
교과서 아닌 책을 들여다보고 있으면, 『그거 무슨 책이냐 공부하지 않고』 『독서감상문 써 오래는 걸』
아이들을 보살핀답시고 이런 싱거운 문답을 되풀이한다. 이건 공연한 간섭이다.
학교에서 대여섯 시간공부를 하고 돌아 왔으니 좀 쉬어야 마땅하고 그림 그리기·노래부르기·책읽기 따위로 정서를 기른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그것이 눈에 거슬리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학교공부, 교과서를 배우는 공부를 으뜸으로 치고 있기 때문이다. 시험을 잘 치러야 점수를 많이 받는다. 점수를 많이 받아야 잘하는 공부다.
공부를 잘해야 좋은 학교에 갈 수 있다.
좋은 학교에 가야 이담에 출세할 수 있다.
이 막연한 「출세」라는 생각이 부모의 머릿속에 박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공부해라, 공부해라』따라 다니며 노래하듯 한다. 우리 어린이들은 공부보다도 「공부」라는 말에 눌려 기를 못 펴고 지낸다.
잘 사는 다른 나라 부모들은 잘 먹이고 잘 놀려서 튼튼히 자라고 남과 잘 어울려 지내도록만 보살피고 바란다는 얘기를 듣고 꺼칫한 우리얘들의 모습을 딱하게 바라본 적이 있다.
방학인데도 중3, 고3은 여전히 가방을 들고 다니고, 중l과 국민학교짜리는 책상 앞에 앉아서도 지개를 튼다.
방학을 기다리는 동안이 즐겁지, 정작 방학이 되면 많지도 않은 숙제에 눌려 괴로웠던 기억이 살아난다. 그 숙제를 정성껏 해 간 적은 나는 없었다. 그렇다고 마음놓고 놀아 보지도 못했다.
갑갑해 하는 아이들을 보고, 학교에만 안 가는 방학이 아니고, 공부하지 않는 방학이 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을 잠깐 해보았다. 공부란 이해인줄 안다. 바른 이해에서 옳은 판단이 나온다고 본다. 정상적인 두뇌라면 학교에서 배우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이해력이 모자라는 어린이는 시간이 걸리므로, 어떤 문제를 아무리 오래 붙들고 있댔자 헛수고에 그친다. 다 아는 것을 되풀이하는 것도 무의미하고 재미없는 일이다.
무의미하고 재미없는 헛수고에서 풀어주고 벗어남으로써 스스로 홀가분한 마음으로 건전한 오락도 하고, 운동도 하고, 그림도 그리고, 노래도 부르고, 책도 보고 읽게 될 것만 같다.
시키거나 감시하지 않는 자유분위기에서 제 뜻대로 해야만 진정한 정서가 길러질 것만 같다. [어효선<아동문학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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