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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화 속의 대결」의 의미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7·4성명은 우리 국민의 의식구조와 가치관체계에 있어서 소리 없는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지금까지 공산당을 불구대천지원회로 여겨왔던 한 국민으로서는 대화에 의한 긴장완화, 무력도발의 방지, 다방면적인 제반교류, 평화공존지향 등을 약속한 「남북공동성명」에 접하게 되자 처음에는 어리둥절하였다가 점차로 그 진의를 파악하고 『대화 속의 대결』시대에 대비코자하는 과정에서 그 같은 변화가 일어난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국민의 의식구조 변화에 자극을 주고있는 것은 7·4성명 중에서도 특히 그 1조3항, 즉『사상과 이념·제도의 차이를 초월하여 우선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 단결을 도모한다』는 구절이다. 어떤 사람은 이를 높이 평가하여 그것이 마치 우리민족의 세기적인 독창인 것처럼 생각하고 있으며, 또 다른 어떤 사람들은 이 구절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 그것이 현실적으로 곧 실현가능성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구절을 다분히 회의적으로 생각하는데, 앞으로 소박하고 선량한 국민들이 이 구절을 그냥 믿어 공산당으로부터 화를 입지 않을까 염려하여 그 논리적인 근거를 여기 밝혀둘 필요를 느낀다.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는 우리는 개성의 다양성과 개인의 자유가 사회의 진보와 발전의원동력을 이루는 것임을 확신하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상대주의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다. 상대주의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는 한 자기의 것과 다른 사상이나 이념·제도의 존재가치를 인정하며, 반대되는 사상이나 이념·제도가 민주주의의 기간을 해치지 않는다면 이들을 말살할 생각이 없다. 그리고 우리들 민족주의 신봉자는 인간존재의 본질적인 바탕을 민족으로 보기 때문에 비록 민족이 대립하는 몇 개 사회계급으로 나누어져 있다하더라도 계급대립의 차를 넘어 민족이익의 구현을 위해 민족적 대 단결을 도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민주주의 및 민족주의 신봉자들의 입장에서는 사상·이념·제도의 차이를 넘어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인 대 단결을 도모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결코 잘못이 아니다.
그러나 공산주의자들의 사고방식은 우리와 근본적으로 다르다. 개성 외 다양성 및 개인의 자유가 사회의 진보와 발전에 「마이너스」가 된다고 생각하여 철저한 전체주의적인 통제를 가지고 「획일 사회」를 만들려는 공산주의자들은 기대주의적인 가치관을 갖고 있는 탓으로 공산주의가 아닌 사상·이념·제도의 존재가치를 전혀 인정치 아니하며, 「반공산주의」는 물론 「비 공산주의」의 사상·이념·제도를 말살하기 위한 투쟁의 전개를 필연적인 역사적 사명으로 알고 있다. 그뿐더러 공산주의자들은 계급사관의 신봉자로서 인간존재의 본질적인 바탕을 계급이라 생각하고, 민족이란 인간존재양식의 가상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계급적인 대립을 넘어 민족적인 대 단결을 도모하는 것은 이론상은 물론 실천 상으로도 있을 수 없는 일로 생각하고 있다.
물론 공산당도 그들의 소위 「기본계급」과 다른 계급과의 연립제휴가 일시 가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민족통일 전선」이니 「인민전선」이니 하는 것을 형성하지만, 「민족통일전선」이나 「인민전선」은 어디까지나 비「기본계급」을 일시 이용하기 위한 수단이지, 결코 대립하는 계급간의 진실한 화해·협조를 의미치 않는다.
따라서 사상·이념·제도를 늘 계급적인 것으로 보는 공산주의자들이 사상·이념·제도의 차이를 넘어 하나의 민족으로서 민족적 대 단결을 도모하겠다고 하면 이는 분명히 공산주의의 자기부정이 된다. 우리는 공산주의자들이 공산주의를 버리고 진정으로 민족적 대 단결을 도모하는데 성의를 보여줄 것을 요망한다. 그러나 우리의 이러한 기대는 십 중 팔, 구가 헛될 것이고 보면 7·4혁명의 1조3항은 공산주의자들이 순박하고 선량한 우리국민의 사상의식을 동요시키고, 나아가서는 공산당에 대한 경각심을 마비시키기 위한 위장평화공세의 표현이라고 밖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우리국민은 「민족적대단결도모」라는 언어의 마술에 홀리기에 앞서 그것이 공산주의자에게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정확히 파악해둘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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