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비극 전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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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1면

<본선 32강전> ○·우광야 6단 ●·서봉수 9단

제15보(192~204)=흑은 무사 귀환만 하면 대차로 승리합니다. 백을 잡을 필요가 없는 거지요. 백은 어떻습니까. 대마의 목숨이 바람 앞의 촛불 같은 상황이지만 단지 목숨만 구해서는 지게 됩니다. 그래도 백의 우광야 6단은 행복합니다. 좀전까지만 해도 변화의 여지가 전혀 없는 깜깜한 절벽이었지만 지금은 싸워볼 수는 있으니까요. 시간이 많다면 희망이 1%도 없는 싸움이지만 지금은 초읽기 상황이고 더구나 상대는 60 노장이니까요.

 192로 연결한 뒤 194를 하나 선수한 대목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습니다. 백은 어차피 196 쪽의 돌파 외엔 활로가 없지만 그렇게 마구 돌파하다 보면 상변 백 대마가 거덜거리게 되죠. 그래서 비상구를 확보하려는 건데요, 어차피 소용은 없겠지만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이 대목에서 서봉수 9단은 A로 느는 대신 195로 꽉 메웠는데 이 수는 ‘수상전’을 염두에 둔 수입니다. 만약에 중앙 백과의 수상전이 아니라 ‘상변 포획’ 쪽에 무게를 뒀더라면 195는 A가 낫겠지요.

 급박한 초읽기 상황에서 서 9단이 왜 ‘수상전’ 쪽에 마음이 꽂혔는지는 미지수지만 바둑은 이때 ‘비극’ 쪽으로 한 걸음 더 이동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196부터 백은 뚫고 나갑니다. 204까지 외길인데요, 여기서 서 9단의 손이 잠시 멈칫 하는군요. ‘참고도’ 흑1로 빠진다면 백2는 외길이고 여기서 상변 백을 잡는 것은 식은 죽 먹기인데…서 9단은 망설이고 있습니다. 불안합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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