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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27주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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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세계의 이목이 크게 한반도에 쏠리고 있는 마당에서 우리는 다시금 8월15일을 맞게 된다. 따라서 여느 때 보다는 다른 역사적인 문맥 속에서 우리는 지금 8·15의 의미를 재음미해 볼 필요를 느끼고 있다.
해방 후 27년간의 민족사의 발자취를 더듬어 살펴 보건대 우리에게 8·15는 적어도 삼중의 기념비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첫째, 그것은 한민족으로서는 일제의 식민지 기반에서 해방이 됐다는 광복의 뜻을 가졌으니 1945년의 8·15가 곧 그것이었다.
둘째, 그러나 일제의 사슬에서 해방된 한민족은 『한 민족, 하나의 국가』 건설에는 실패한 채 자유 선거가 「가능한 지역」에서 만이라도 우선 하나의 합법 정부를 수립하는 발걸음을 내딛게 되었으니 1948년의 8·15가 곧 그 날이다.
세째, 한 민족으로서의 광복이 한 국가의 건설에 연결되지 못한 분단의 비극에 대해서 해방 4반세기만에 처음으로 통일을 향한 현실적이고 합리적인 「이니셔티브」가 선포되었으니 그것이 곧 1970년의 8·15선언이었다.
요컨대 8·15는 우리에게 있어 긍정적인 측면에서나, 부정적인 측면에서나 하나의 민족으로의 역정을 매듭지어 주는 일자라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는 8·15에 한 겨레로서 겨레를 되찾는 「네이션·빌딩」의 광복의 기쁨을 같이 했고, 우리는 8·15에 한겨레로서 하나의 나라를 만드는 「스테이트·빌딩」에 뜻을 모으지 못한 비통함을 견뎌야 했고, 그밖에 또 우리는 8·15에 다시 한번 한 겨레가 한 나라로서 통일될 수 있는 멀고 어려운 길을 찾아 우리들의 뜻을 굳게 다졌던 것이다.
지난해 8·15전야 대한적십자사에서 선창한 남북 이산 가족 찾기 운동은 그 아무도 거역할 수 없는 민족적인 「어필」때문에 북한측의 호응을 얻어 많은 우여곡절이 있기는 했었지만 드디어 올 광복절 전야엔 본회담 개최를 위한 모든 예비 절차를 매듭짓는 진경에까지 몰고 왔다.
한편 지난 7월초에는 남북한의 고위 당국자들이 한반도에 있어서의 긴장을 완화하고 평화 통일을 위한 몇 가지 원칙에 합의를 보았다는 극적 공동성명을 밝히는 데에까지 이르렀다.
물론 남북 공동 성명이 곧 남북통일을 약속해 주는 문서는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남북 적십자사의 이산 가족 찾기 운동과 함께 지금까지 대화 없이 분단과 확집의 평행선만을 줄달음쳐 오던 남북한 관계에 있어 새로운 민족사의 서장을 장식할 만한 진일보라 평가해서 지나침이 없을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남북 공동 성명」에 못 박아 둔 제약속의 이행과 남북 적십자사의 이산 가족 찾기 운동의 성공을 민족의 이름으로 다시 한번 촉구하고 기원해 마지않는 것이다. 그것이 곧 1972년의 8·15가 명령하는 시대의 요청」이라 할 것이다.
8·15는 이처럼 한민족에 있어선 예나 지금이나 가장 높은 차원에서의 「통합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 그러나 통합이란 원래 현실을 외면한 환상의 세계에서 이룩될 수는 없다. 참된 통합에는 대외적으로나 대내적으로나 먼저 통합을 가로막고 있는 현실적인 장해 요인이 무엇인가를 가리는 냉정한 성찰이 선행하지 않으면 안 된다.
50년대 이래의 냉전의 세계는 한반도의 남북 분단을 심화시켜 놓았고 우리는 그 사실을 알고 있다. 60년대 이래의 근대화 작업은 경제발전을 위한 전략적인 중점 투자로 사회 발전의 불균형과 격차를 심화시킨 것도 사실이고 우리는 그 사실을 또한 알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 같은 사실 인식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어디까지나 출발점이지 종착점이 되어서는 안되리라 믿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사실을 사실대로 직시하는 일이다. 거기에 새로운 출발점은 있을 것이다.
해방 후 스물 일곱번째로 맞는 「8·15」에 우리는 스스로의 통합을 저해하는 요인들을 냉철하게 살펴보고 내일의 보다 큰 민족적 통합을 위한 구상을 다듬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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