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라이버」후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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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이를테면 그것은 「정치의 한 양식」을 의미한다. 정략을 넘은 정치「모델」을 그린「데상」같다. 「맥거번」후보의 「러닝·메이트」인 「이글튼」의원이 정신장애의 병력자라는 것이 밝혀지자, 미국시민의 여론은 분분했다.
극악의 경우는 『정신이상자에게 어떻게 미국의 양심을 맡기느냐』는 성토까지 있었다. 「미국의 양심」이란 「상원」을 지칭한 것이다. 그러나 『천재는 정신이상자처럼 보인다』는 동정론도 없지 않았다.
『맥거번! 고·어헤드!』(「맥거번」, 밀고 나가라)라는 편지도 몰려 왔다. 「이글튼」의원은 그러나 사퇴하고 말았다. 깨끗한 처신을 한 것이다.
사퇴의 결단은 정치인의 정치생명과도 같다. 「나아갈 자리」에 나가지 못하는 것은 책임의 기피이다. 물러설 자리에서 물러서지 않는 것은 비겁이다. 「책임」과 「비겁」을 분별 못하는 자야말로 정신이상자다. 바로 그런 정신이상자는 역사상 얼마든지 있었다.
「분별의 정치인」은 부단한 가능성을 갖는다. 「에드워드·케네디」는 그의 『가장 화려한 기회』를 스스로 포기했다. 그것은 양식의 결단을 내린 것이나 다름없다. 그는 「코페크니」양 사건에 변명 없이 책임을 진 것이다.
『정치가의 임무는 미래를 생각하고, 결단하고, 또 책임을 지는 것이다』. 독일의 사회학자 「막스·베버」의 말이다.
「양식」은 정치인 자신뿐 아니라, 국민에게도 필요하다. 1945년7월 「처칠」수상은 대 독전에서 승승장승의 영웅이 되어 조기 총선을 실시했었다. 그는 전승의 영웅으로 당연히 수상에 다시 추대되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영국 국민은 단호히 그를 대신해서 「애틀리」의 노동당을 압도적으로 지지했다. 『전쟁의 영웅이 반드시 평화의 영웅은 아니다』는 양식의 승리였다. 「처칠」은 국민의 짐이에 묵묵히 순종했다.
오늘 「맥거번」이 「서전트·슈라이버」를 「러닝·메이트」로 다시 맞은 것은 전화위복이다. 「슈라이버」는 「맥거번」이 억지로 풍기고 싶어하는 「케네디」풍의 체취를 갖고 있다. 그는 젊은 세대에 「어필」하는 새로운 가치관의 인물로도 평가된다.
「파리」주재 미국대사시절에 그는 자전거를 곧잘 타고 다녔다. 「파리」의 한 학생이 물었다.『왜 자전거를 탑니까?』 「슈라이버」는 이렇게 대답했다. 『아무 데서나 설 수 있으니까!』. 그 때문에 그는 근엄한 외교관의 전통적인 모습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많은 사람과 많은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인간적인 외교관으로 명망이 있었다.
「수라이버」의 부인은 바로 「케네디」가의 장녀인 「유니스·캐네디」. 여류작가 「펄·벅」의 『「케네디」가의 여인들』이라는 저술을 보면 『가장 「케네디」가 다운 여인』이 그 「유니스」이다. 「펄·벅」은 그 여인을 「슈라이버」의 「정치적 자산」(political assets)라고 부르고 있다.
「맥거번」은 이제야 자신의 선풍에 관심을 돌리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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