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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부 누른 주 당료 체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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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중공 당국이 전 국가 부주석 겸 국방상 임표의 실각·사망 사실을 공식 확인함으로써 작년 9월 이후 10개월간에 걸쳐 파다했던 『임표 「미스터리」』가 일단락 되고 명실상부한 주은래 체제가 금후 중공의 정책을 주름잡을 것 같다.
상당 기간을 침묵 속에 묻혔던 임의 행방이 이 시기에 밝혀진 것은 이미 종결 단계에 접어든 것으로 보이는 중공 지도 체제의 대 개편과 관련, 중대한 중공 정치 판도 변모의 계기를 마련할 것으로 보인다.
임표 실각의 중요한 배경은 문화 혁명 후 내정 면에서 당 조직의 재건과 외교 면에서 대미 접근 정책을 둘러싸고 임과 모택동 주은래 사이의 이견이 「음모 계획」으로 발전함으로써 비롯됐다. 문화 혁명 후 69년4월에 개최된 구전 대회는 임표를 모택동의 후계자로 공식 지명했었다. 이때 확립된 중공의 정치 기류는 중앙위원회의 45%를 군인이 차지해 일찌기 중공 공산당의 역사에서 볼 수 없었던 「군우위」의 이상 현상을 나타냈었다.
뒤따라 진행된 지방 당 조직의 재건 과정에서도 군부가 군인 지배 체제의 확립을 주장함으로써 당 간부와의 주도권 경쟁이 노골화되었었다. 이러한 대립은 70년9월의 제2차 중앙위총을 전후해서 절정에 달해 전통적인 당 우위의 회복을 주장하는 모택동·주은래와 임표·황영승 (해방군 총 참모장) 사이의 정면 대립으로까지 번졌다.
이렇듯 모택동과의 정면 의견 대립까지도 불사 할 수 있었던 임표가 실각하게 된데는 군부 안의 복잡한 파벌 문제와도 관련을 지을 수가 있다. 비록 군이 중앙위원회의 45%를 점령할 수 있었지만 군부내의 임표파가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지는 못했었다. 더우기 주은래와 가까운 섭검영 (당 중앙 군사위 부주석) 진의 (전 외상·고인) 서향전 (당 중앙 군사위 부주석) 등 군의 원로급이임에게 등을 돌리고 있었다.
이렇게 볼 때 임의 실각은 모택동의 「카리스마」를 등에 업은 주은래 중심의 당료파와 비림표파 군인들의 연합 세력에 의해 이루어졌으며 앞으로 당·행정 기관의 재건에 당료파가 크게 득세할 것을 강력히 시사한다.
그런데 문제는 왜 중공 당국이 10개월이 지난 이제 와서 임의 실각 진상을 밝히는가에 임「미스터리」의 대미가 있는 성싶다. 이점에 관해 우선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임의 비중이 끼칠 전반적 영향력에 대한 조심스런 고처이다.
군부 안의 임표 추종자들과 그를 모택동의 후계자로 생각하고 있는 일반 국민들이 급작스런 발표로부터 받을 충격은 자칫, 걷잡을 수 없는 동요를 초래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중공 당국은 지난봄부터 전국 각지의 부락 단위 학습회에서 당 이론지 「홍기」등을 통해 서서히 임의 죄상과 실각 사실을 알려왔다. 임을 『자기만이 가장 혁명적·진보적이라고 주장하는』「극좌형식 주의자」로 규정하고 이미 실각된 유소기일파와 맞먹는 당 파괴 분자로 몰아세웠다.
중공의 각종 「매스컴」들의 논조는 임표가 ①홍위병 운동 후 당의 재건에 반대하고 군을 정치 세력으로 전환, 「군사 독재」수립을 꾀했으며 ②대미 접근을 시종 반대했을 뿐만 아니라 ③드디어는 반모「쿠데타」를 기도, 모를 암살하려다 실패하자 소련으로 탈출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선전은 이제 거의 성공을 거두었다.
여기에 덧붙여 임표가 69년 구전 대회 정치 보고에서 미국 대신 소련을 『제1의 적』으로 간주한 사실을 상기시키고 임이 소련으로 도망하려 했던 것을 그의 일동성의 본보기로 내세웠다.
이외에 임표 실각 공개에서 읽을 수 있는 것은 당 및 행정 기구의 정비와 재건이 모택동·주은래의 의도대로 당 중심으로 성공리에 군인들과 교체되어 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제 임표 문제가 일단락 된 이상 앞으로 주은래 「팀」이 처리할 문제는 지도 체제 개편과 당 체질 개선 및 이의 새로운 정책의 전개에 집중될 것 같다.
현재의 중공 당 최고 지도부는 69년4월의 구전 대회에서 선출되었다. 문혁 소조를 이끌던 진백달 (정치국 상임위원) 이설봉 (정치국 후보 위원) 이 숙청 당한데 뒤이어 사부치 (정치국원)가 죽고 임표 실각과 함께 황영승 (총 참모장) 오법헌 (공군 사령관) 이작붕 (해군 정치 위원) 구회작 (총후근부장) 등이 거세되어 현재 정치국 상임 위원회는 5명 (모택동 임표 주은래 진백달 강생) 중 3명만이 남게되고 정치국부 25명은 17명으로 줄어들었다.
이들 결원을 보충하는데 있어 분명한 것은 차후의 최고 지도부가 주은래 일파로 채워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미 임표 후임의 국방상에는 군부 안의 열렬한 주은래 지지자인 섭검영이 내정된 것으로 알려졌다.
당 체질 개선의 요체가 될 새 당원의 선출 기준에는 소위 임표의 「3개 원칙」즉 ⓛ모택동 사상에 충실한자 ②「프롤레타리아」 계급의 정치에 입각한 인민과 밀접한 자 ③혁명적 기상이 불타는 자 등 극좌적 주장이 다소 후퇴하고 모택동의 「5원칙」중 『자기와 다른 집단이나 개인과도 진지하게 토론 할 수 있는 인물』조항이 크게 참작될 것 같다.
이것은 군부의 「극좌 편향」을 견제하고 『모 구상·주 실천』으로 옮겨지는 중공의 정책이 계속 강화, 유지될 것을 뜻한다. <전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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