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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훈의 청와대 통신] 盧대통령 "자전거 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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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뾰족한 철침 난간, 가죽 재킷의 건장한 경찰관을 통과하면 15만장의 푸른 기와로 뒤덮인 청와대가 나타난다. 내부 또한 호화롭고 위압적이다. 붉은 색 양탄자, 운보(雲甫) 김기창 화백의 산수화, 드높은 천장의 금빛 샹들리에가 곳곳을 장식하고 있다.

10일로 청와대 입성(入城) 2주째. 노무현(盧武鉉)대통령과 청와대 사람들은 이런 새 환경에 대해 다양한 스트레스를 호소하고 있다.

盧대통령은 서울 명륜동 집에서 가져온 자전거를 최근 청와대 내에서 타겠다고 했다. 질겁한 경호팀은 제지했다. 청와대에 '갇힌' 그는 운동량이 부족했다. 2년 전부터 보관만 해오던 자전거를 생각해냈다. 경호팀은 "차라리 조깅이면 모를까 두 손을 쓰는 자전거를 함께 타는 경호는 곤란하다"고 했다.

盧대통령은 최근 "청와대에 있는 강아지가 낯선 사람인 내게 하도 짖어대기에 가서 몇마디 해줬다"고 지인들에게 말했다. "다음날부턴 순하고 조용해지더라"는 것이다. 무슨 말을 했을까 화제였다. "넌 정권 바뀐지 모르는구나"라고 했을 거라는 우스개도 나왔다.

관저와 본관 사이 쳇바퀴 출퇴근의 盧대통령은 이 시간을 활용하려고 걸어서 다닌다. '5분 코스' '10분 코스' 등 짧은 거리지만 다양한 루트를 개발하고 있다. 그는 "가끔 밤에 구내를 돌아다니다 곳곳에서 플래시 불이 번쩍거려 엄청 놀랐다"고도 했다. 외부 침입 자동감지기가 작동한 것이다.

그를 밀착 보좌하는 서갑원(徐甲源)의전비서관은 덩달아 오전 2, 3시쯤 벌떡 일어나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다. 걸쭉한 전라도 사투리의 브리핑으로 출입기자들에겐 '인기 넘버 원'인 정찬용(鄭燦龍)인사보좌관은 전남 담양의 3백평 시골집 밭에서 시금치.고추를 키우며 살아 왔다. 청와대 생활 후엔 칫솔을 양복 안주머니에 넣어다니고, 자정쯤 전세 아파트로 귀가해선 소주 두 컵을 단숨에 들이켠 뒤에야 잠이 든다.

5분 간격의 보고와 빽빽한 일정에 시달리는 문희상(文喜相)비서실장은 7일 밤 장관 워크숍 직후 수행과장의 보고를 받던 중 그만 침대에 스르르 쓰러져 잠이 들었다.

오후 6시면 셔터를 내리는 배낭여행사의 '자유인'으로 살던 이호철(李鎬喆)민정비서관은 오전 7시30분 출근, 밤 12시 퇴근의 주7일 격무가 버겁다고 했다.

비서관에 내정된 2월 초 이후 아직 신원조회가 끝나지 않아 봉급 한푼 못받고 있어 "친구들과의 점심도 얻어먹으며 지낸다"고 한다. 한 비서관은 "구두닦을 시간이 없는데 청와대 안엔 까다로운 신원조회 탓에 구두닦는 아저씨조차 없더라"고 했다. "그간의 권위적 대통령 탓인지 비서 10명 이상 회의할 테이블이 한 곳도 없더라"며 놀라워 했다.

무엇보다 '외부와 청와대의 단절' '대통령과 비서의 단절'은 가장 큰 스트레스로 꼽힌다. 한 비서관은 "하루 두번뿐인 시청앞을 왕복하는 셔틀버스, 대중교통의 부재, 멀리 떨어진 직원 주차장 탓에 누굴 만나기 여의치 않다"고 했다. "비서실에서 대통령 집무실까지 세차례 검색을 받더라"고도 했다.

盧대통령은 이미 국정의 머리인 청와대의 구조 개선을 선언했다. 아예 청와대를 뜨면 좋을 터이지만 그게 어렵다면 국민과 가깝고 생각할 시간도 있는 청와대로 과감히 개혁했으면 싶다. 머리가 시원해야 몸이 잘 돌아가는 이치다.

최훈 정치부.청와대 출입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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