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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가는 분장의 명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제아무리 「변신」에 능해도 분장에 서투른 정치가는 빛을 못 볼 세상이 돼 가고 있다.
「칼라·텔리비젼」이 널리 보급되고 각종 시각 매체가 발달한 미국은 더욱 그렇다.
미국에서 정치한다는 사람 치고 분장의 도사가 아닌 사람이 거의 없다는 소리가 나돌 정도다. 풋내기보다는 능구렁이가 더 하다고 한다.
금년 민주당 전당 대회에서 대통령 후보 지명에 실패한 「휴버트·험프리」 상원 의원은 머리를 염색한다. 12년 전엔 짙은 회색이었다. 8년 전엔 검은색. 요즘엔 어느 날은 붉은색, 어떤 때는 갈색, 변화무쌍이다.
어느 모임에선가, 휘황한 불빛아래 「카메라」와 기자에 둘러싸여 의젓한 걸음걸이로 연단으로 걸어 나가던 험프리를 향해 「주책없는」 한 여인이 『내기를 걸어도 좋아요. 저 머리는 염색한 거예요』하고 소리쳤다. 화가 난 「험프리」는 『나도 내기를 걸어도 좋아요. 염색하지 않았소』하고 쏘아붙였다.
분장에 쏟는 열도 대단하지만, 이 사실을 감추는데도 필사적인게 재미있다.
우중에 「닉슨」이 우산도 없이 거닌 적이 있었나보다. 목덜미에 흘러내린 빗물이 누런 색이었다. 그에 관한 저서를 2권이나 써낸 저명한 기자 「존·오스본」이 이것을 봤다. 『대통령 머리칼은 염색한 머리칼』이라고 기사화했다.
『염색약은 빗물 정도에 흘러내리지 않는다네.』「닉슨」은 오스본을 백악관에 불러들여 점잖게 꾸짖었다. 『그렇다면 염색약이 아닌 무슨 다른 염색 물질을 쓴 모양』이라고 굳게 믿는 오스본과 닉슨의 주장은 아직은 누가 옳은지 모른다.
가발도 애용된다. 「맥거번」 민주당 대통령 후보도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가발을 사용했다. 「린든·존슨」 전 대통령은 양쪽 옆머리에 가발 조각을 붙였다. 어느날 「헬리콥터」에서 내리다가 「프러펠러」 바람 때문에 이것들이 공중으로 날았다. 저격범의 흉탄이 스쳐 지나가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뜯겨져 날리는 것으로 판단한 경호원들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순간 그들은 『아-비둘기였군』하곤 안심했다.
정치가들의 관심이 머리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닉슨」은 60년 고「존·F·케네디」와의 텔리비젼 토론의 쓰라림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다. 당시 「텔리비젼」 화면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야말로 곧 패배의 커다란 원인이었기 때문이다.
「케네디」가 연극 배우와 같은 분장을 하고 나온데 비해 「닉슨」은 억센 턱수염만 깨끗이 깎았을 뿐이었다. 화면엔 마치 환자처럼 창백하고 초췌하고 긴장돼 보였다.
양복도 배경과 거의 같은 색을 입었기 때문에 명확하게 부각되지 못해 결국 박력 없는 정치가가 돼 버린 것이었다.
그후부터 「닉슨」은 자신의 몸가짐에 민감해졌다. 여가만 있으면 해변에서 살갗을 태운다. 백악관에선 「선·램프」를 대용한다.
그는 치열도 교정했다. 선거 PR 전문가 「리처드·스캐먼」은 이 같은 현상은 곧 미국의 생활 양식을 반영하고, 정치는 연극임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했다. 예상을 불허하는 막상막하의 경쟁에서는 이 같은 노력이 큰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그는 말한다.

<로스앤젤레스·타임스지=본사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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