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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나드·쇼」의 신비 파헤칠 두 번째 서한 집 출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세계문학사상「프랑스」작가「볼테르」(1694∼1778)처럼 많은 서한을 남긴 문인은 없지만「볼테르」를 제외하면 영국극작가「조지·버나드·쇼」(1856∼1950년)가 누구보다 많은 서한을 남긴 문인으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쇼」는 생전에 그토록 많은 서한을 남겼으면서도 자신의 서한 집 출판은 별로 달가와 하지 않았다. 많은 출판업자들이 그의 서한 집 출간을 서둘렀으나 번번이「쇼」의 반대에 부딪쳐「쇼」생전에 그의 서한 집은 끝내 햇빛을 보지 못했다.
그가 죽기 얼마 전 영국의 어느 출판업자는 마지막으로 그의 서한 집 출판을 간청했으나 「쇼」는『서한 집 같은 것은 이미 5백만 권이나 나왔다』면서 역시 그 업자의 계획에 쐐기를 박았다.
이렇게 해서 결국「쇼」생전에 그의 서한 집은 나오지 못하고 말았으나 그가 죽은 지 얼마 후 그의 첫 서한 집이 출간되자 이 서한 집은 굉장한 인기를 모았다.
이러한「쇼」서한 집의「붐」을 타고 최근 영국에서는 두 번째의「쇼」서한 집이 출판됐다.「막스·라인하르트」출판사 간.「댄·로렌스」교수가 편집을 담당한 이 서한 집은 1898년부터 1910년까지의, 그러니까「쇼」가 42세부터 54세까지 사이에 썼던 각종 편지를 모은 것인데 무려 1천「페이지」에 달하는 방대한 것이다.
「로렌스」교수는 이 서한 집 출간에 뒤이어 거의 같은 분량의 서한 집 2권을 출간할 계획으로 있는데「로렌스」교수에 의하면「쇼」가 남긴 편지는 무려 25만 통에 달한다고 한다.
「쇼」의 첫 편지가 1874년에 쓴 것으로 되어 있으니까 그는 76년 동안 매일 평균 10통씩의 편지를 썼다는 계산이다.「쇼」의 이처럼 놀라운 정력은 보통사람 10명의 정력을 합친 정력으로 평가되고 있다.
특히 이번 출판된 서한 집은 그가 극작가의 확고한 위치를 차지한 40대에 담긴 서한들의 모음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고있는데 이들 서한은 당시 각 분야에 걸쳐 활약하던「쇼」의 모습을 단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예를 들어 당시「쇼」가 앞장서서 일으켰던「내셔널·디어터·무브먼트」에 관한 것이라든지, 극 작 활동 이외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관한「쇼」의 참여상황은 문화사적 측면의 자료로도 평가받고 있다.
「쇼」는 이제까지 위대한 극작가로서 숭배 받고 있지만 연극 이외의 분야에 대한 그의 활동은 비교적 적게 평가되었던 것이 사실이다. 이런 점에서 그의 서한 집은 새로운「쇼」의 면모를 되찾게 해 줄 가능성도 있다. 또한「쇼」의 사생활이 비교적 널리 세상에 알려졌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신화처럼 남고있는 그의 사생활의 단편들도 이 서한 집에의 얼 해 마쯤 밝혀질 수 있으리라는 얘기다.
이를테면「쇼」가 보통사람 10배의 정력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이 40대 초기부터의 성욕승화 채식 금주 금연일 것이라는 이제까지의 통설도 뒤집어 질 수 있을지 모른다는 것이다. 한 작가의 내면세계를 관찰하는데 있어서 그의 작품보다 오히려 서한이 더 효과적일 수 있으리라는 이야기는 누구보다도「쇼」에게서 더욱 여실한 감을 주고 있다.
「쇼」의 이번 서한 집 가운데는「아치볼드·핸더슨」(후에「쇼」의 생애를 쓴 사람)에게 보낸(1905년)1만5천 단어의 편지가 수록돼 있는데 이 편지는「쇼」에 관한 모든 신비를 파헤치는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자화상「스타일」로 씌어진 이 편지는「쇼」의 문학세계에서「쇼」의 내연 적인 성격에 이르기까지「쇼」의 진부를 보여주고 있다.
이 편지가 보여주는「조지·버나드·쇼」라는 인물은 이미 50여 편에 달하는 그의 작품이 대변하듯 모든 악의 모든 적의를 싫어하는 인간, 실질적이면서도 은화 한 감각적이면서도 조용한 그런 인간상인 것이다.
결국「쇼」의 서한 집은 비록 작고한 문학가의 서한 집이지만 그곳에 사회와 술·정치의 역사가 담겨져 있고 읽는 사람들로 하여금 감격·흥분·웃음 찬탄을 마음껏 베풀어주는 어떤 귀한 문학서적 보다도 높은 가치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영「업저버·리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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