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네 터치] 왕년의 女優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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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 어디 계세요, 어서 돌아오세요."

왕년의 여걸 도금봉(73.사진)씨를 찾는 여성영화제(집행위원장 이혜경)의 목소리가 애닯다. 사방으로 수소문해도 그의 근황을 알아낼 길이 없다. 충무로를 쥐락펴락했던 스타가 이토록 흔적없이 사라질 수 있을까 싶다.

다음달 11~18일 서울 동숭아트센터 등에서 다섯번째 행사를 여는 여성영화제측은 올해 도금봉 회고전을 마련했다. 영화제 처음으로 한국 여성배우의 작품을 집중 조명하는 자리다. 그런데 막상 주인공을 모실 수 없으니….

"평소 친분이 두터웠던 최은희 선생님을 통해 근황을 알아보려고 했어요. 그런데 정말 소식 하나 들을 수 없네요." 주유신 프로그래머는 답답한 심정을 털어놓았다. 행사는 한 달 앞으로 바짝 다가왔으나 정작 당사자는 회고전 개최 사실조차 모를 판이다.

주씨는 사실 '주인 모르는 잔치'란 코미디 같은 상황을 예상했다. 3년 전 영상자료원에서 그의 회고전을 열었을 때도 지금 같은 상황이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래도 짧지 않은 세월이 흐른 만큼 실오라기 같은 희망을 걸었다.

"정말 안타까워요. 도저히 연락이 안돼 회고전 대상을 변경할까 하는 생각도 했습니다. 그래도 당초 취지를 지켜 강행하기로 했어요."

1957년 '황진이'(감독 조긍하)로 데뷔해 97년 '삼인조'(박찬욱)에 마지막 출연하기까지 지난 40년간 충무로를 호령했던 도금봉씨는 남자 배우 못지 않은 카리스마로 유명하다. 5백여편의 영화에 출연하며 우리 영화사에선 드물게 여성의 욕망을 솔직하게 드러냈고, 사회적 관습에 저항하는 여성을 표현해왔다.

'세기의 요우(妖優)''관능파''또순이' 등의 별명이 따라 다녔다. 도씨는 아들의 사업 실패, 그의 식당 경영난 등으로 수년 전부터 칩거에 들어간 것으로 알려졌다.

올 영화제에선 '또순이'(63년),'월하의 공동묘지'(67년),'산불'(67년),'백골령의 마검'(69년) 네 편이 상영된다.

박정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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