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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표는 모택동 암살을 기도했었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수수께끼 속에 잠겼던 중공국방상 임 표의 실각은 그의 모택동 암살기도가 실패, 공군기로 소련으로 탈출하려다 사망한 것이라는 사실이 최근 밝혀진 중공의 비밀문서에서 드러났다. 지난해 9월13일 몽고상공에서 격추된 정체불명의 항공기가 임 표의 탈출기였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 영국의「이코너미스트」지의 보드에 따르면 비행기의 잔해 중에서 발견된 9구의 시체 중에서 소련의사들은 임 표의 시체도 확인해 냈던 것이다.
실제로 지난해 9월 이래로 임 표와 함께 중공군 총 참모장 황영승, 공군사령관 오법헌 등이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고 있으며 모택동의 이름에 그림자처럼 붙어 다니던 임 표의 이름이 없어진 것도 이미 오래 전의 일이다.
그러나 임 표의「쿠데타」계획과 죽음에 관한 증명자료는 지금까지 알려져 있지 않았었다. 이후로 인민일보가『당과 군에서 권력을 잡으려던 정치적 배신자』를 규탄하고 중공군기관지 홍기가『아무리 오래된 친구이며 동지나 간부일지라도 모택동의 적은 쓸어버려야 한다』고 간접적으로 임 표를 지적하는 문구로 이런 사실이 있었다는 것을 뒷받침해 왔었다.
이 일이 있은 뒤 임 표의「쿠데타」계획에 관해 이곳저곳서 추측이 속출했는데 그중 대표적인 것이「홍콩」발 보도들.「홍콩」의 어느 신문보도내용은 중공 공산당중앙위원회의의 비밀문서를 중심으로 하고 있다.
이 문서에 따르면 71년 9월에 임 표 일당은 세 차례에 걸쳐 모택동 암살을 기도했다. 즉 모택동 전용기에 폭탄장치를 했다가 사전에 발각된 일이 있으며 다음은 모택동이 여행 중 묵기로 한 숙소에 시한폭탄을 장치했으나 다른 곳에서 여장을 푸는 통에 실패했으며 또 한번은 특별열차의 환기장치에 독「가스」를 주입했으나 모택동의 전용차량은 별도의「에어·컨디션」장치를 하고 있어 실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더욱 신빙성 있는 자료로는 국부의 정보기관도 진본으로 여기고 있는 중공 당 중앙위의 1972/4호『중앙공보』의 임 표의「쿠데타」계획이다.
이 계획에 의하면 임 표는 모택동이 문화혁명 때 주도적 역할을 했던 진백달을 제거하자 같은 정치국원인 자신의 부인과 공군작전 부 주임인 그의 아들 및 군부 안의 그의 추종자들과 함께 모택동을 암살하기로 작정했다. 자신들에게도 진백달과 같은 운명이 닥칠까봐 두려워했던 것이다.
이「쿠데타」계획은 71년 3월에 성안되어 번호 571을 지닌『기술계획』이라 이름 붙었다. 이 571은 중국어 발음으로「우찌이」인데 무력봉기라는 뜻의『무 기리』와 발음이 같다. 이 계획에서 제거대상 인물 중 모택동은『B망』, 모의 측근요인은『전함』, 정치국원들은『적군』으로 돼 있다.
이 계획은 권력장악의 시기를『B지와 적군이 우리손아귀에 들어오는 날』로 결정하고 있다. 중공 당 중앙위 1972/4호에 의하면 이 계획은 공군의 정치위원인「리·웨이·셴」이 폭로함으로써 발각됐다.
「홍콩」의 일간지 명 보는 이에 대해 반 임 표 파의 소식통을 인용, 임 표가 처음에는 상해의 모택동의 여름별장을 점령함 계획을 세웠었다고 보도했다. 그러나 임 표는 중공군병사중 모에게 총부리를 겨누려고 할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를 취소했다.
「우찌이」계획에는 이를 감안, 『B-52에 대한 대중의 존경이 뿌리깊다. 게다가 B-52는 자주 대중 앞에 나타나지 않으며 항상 엄중히 경비하기 때문에 이 일을 하는데 많은 난관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따라서 임 표는 공군사령관 오법헌에게 모의 별장을 폭격하라고 명령했다. 오는 이를 상해 관 구 사령관에게 전달했다. 그러나 상해사령관은 이럴 경우의 도피구로서「파일러트」들에게 분필가루를 눈에 문지르고 눈에 안대를 착용케 하고 비행불능이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임 표는 북경에서 이 사실을 모르고 모의부인 강 청과 주은래를 체포하기 위해 의논할 것이 있다고 초청, 상해로부터의 폭격보고를 기다렸다.
그러나 임 표는 상해로부터「파일러트」들이 모두 안질을 앓고 있다는 보고를 듣게되고 주은래는 임의 거동이 의아스러워 모택동과 전화로 연락, 임 표의 계획이 드러났던 것이다. <슈피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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