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5)추상화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한국 근대미술 60년 전을 어느 시기까지로 끊느냐에 대해서는 그 동안 얘기가 많았다. 당초에는 1950년까지로 하한선이 결정됐었는데 도중에 60년까지 연장된 것이다.
50년이라면 6·25동난 발발까지이고, 60년은 혁명을 계기로 삼는 것이 된다.
미술운동이 국내의 정치적 상황에 크게 좌우될 것은 없지만, 6·25는 그런 대로 새 전기가 된다. 동난 중에는 미술활동이 거의 중단상태에 빠지지만 다른 한편 북에 있던 작가들이 대거 남하하여 합류하고 또 일부는 외국으로 떠나게 된다. 또 많은 작가들은 절박한 피난지에서 그래도 호소하고 의존할 데란 본업인 그림밖에 없으므로 새로운 미술운동을 전개하게 마련이다. 이에 비하여 4·19나 5·16은 어떤 전기도 못 된다.
그래서 50년까지로 끊을 때 사실중심의 근대미술을 집약할 수 있는데 다만 벽면을 채울 작품량이 문제가 됐다. 또 50년대에 비로소 실적 있는 두각을 나타낸 일부 중견화가들이 이 전람회에 참가하길 희망하기 때문에 60년까지로 연장하는데 적잖이 작용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하한선을 10년 연장하고 보니 출품 수는 늘어났지만 몇 가지 문제가 생겼다. ①구 작을 찾느라고 고심하지 않아도 되는 폐단이 생겼고 ②출품수가 넘쳐버려 인선에 있어서는 55년으로 줄여버리는 엉뚱하고 모호한 기준을 만들어 냈으며 ③50년대 초의 어설픈 추상화작품들이 끼게 된 것이다.
1955년 이전에『국전에서 특선한자』로 출품작가를 제한했을 때 56년∼60년 사이에 해당하는 작가들은 말하자면 모호한 기준 때문에 희생된 셈이다.
물론 그들도 출품 요청을 받고 응했던 까닭에『중도에 빼버림은 우롱하는 처사』라 해서 당국에 진정서를 내는데 까지 번졌다. 이런「케이스」는 박창돈·김형구씨 등 몇 사람이 안 되는데 비해 그때까지 국전을 거치지 않은 몇몇 사람들이 여기에 전시하고 있어서 더욱 잡음의 소리를 만든 것이다.
한편 기득권을 가진 작가들은 60년까지의 작품을 내게 했고, 예외적 우대이긴 하나 작고작가의 경우에는 그 이후의 작품까지도 포함시킨 것이다.
편리한대로 세워진 이 기준으로 말미암아 무너진 것은 전람회의 성격이다. 특히 서양화의경우 추상화 일색이 된 제9실은 60년 전의 이단적인 전시실이 됐다. 그것도 대부분이 50년대 후기의 작품. 근대미술의 테두리 안에서는 도무지 걸맞지 않는 방이다.
물론 우리 나라에서 추상의 경향은 이미 1920년대부터 시도되었다. 이번 전시작품 중에도 주 경·구본웅씨 등의 작품이 그것을 입증한다. 그중 주씨의 추상화는 소품이긴 하지만 오늘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는 수준. 이번에 참가치 않았으나 변영원 씨도 추상화로선 대 선배가 된다. 그런 의미에서 소품들이 많이 걸린 제6실로서 근대미술의 가장 전위적 경향을 대표하는 게 족하지 않을까.
국립현대미술관은 이어 현대미술전을 구상하고 있다고 밝힌다.
미술관은 최근 직 제가 개편됨에 따라 증원케 됐다는 소식이다. 모처럼 가진 근대미술전에는 허점이 적지 않지만 반면에 앞으로의 사업에 요긴한 디딤돌이 됐음을 부인할 수 없다. 어느 모로나 미술관에는 커다란 발전적 계기가 된 것이다. <끝><이종석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