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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쉐링 회장 '정든 1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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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내 안에 한국이 있다."

지난 1일 서울 광장동 W호텔 지하 1층 비스타 홀. 한 외국 기업인의 또렷한 한국말 한 마디에 참석자들이 박장대소 했다. SBS 인기 드라마 '파리의 연인'의 주인공인 탤런트 이동건의 명 대사 "이 안에 너 있다"를 빗대는 한국어 실력이 예사롭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날 독일계 제약회사 한국 쉐링의 게오르그 바그너(56.사진) 회장의 한국 근무 10년을 마무리하는 이임식이 열렸다.

그는 "지난 10년 동안 불고기와 된장으로 몸무게가 10㎏이나 불어났다"며"이제 한국의 일부를 가지고 떠나는 셈"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한국에서의 재임기간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일로 그는 한국이 외환위기를 단기간에 극복한 점을 꼽았다. 바그너 회장은 "한국의 외환위기는 충격이었다.하지만 이를 단기간에 극복한 한국인의 저력에 더 놀랐다"며 "한국인의 근면성과 열성이 없었으면 불가능했던 일"이라고 말했다. 그는 한국 경제에 대한 충고도 잊지 않았다. 바그너 회장은 "한국 정부가 자주 법과 규정을 바꾸는 바람에 외국 기업들이 장기 경영계획을 세우기가 쉽지 않았다"고 말했다. 1995년 한국에 온 바그너 회장은 주한 외국기업인 중 대표적인 친한(親韓) 인물로 꼽힌다. '박은호(朴垠豪)' 라는 한국 이름도 얻었다.

한국에서 사귄 한 대학교수가 지어 줬다. 그는 독일인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맥주보다는 된장 냄새가 난다. 그는 34살 때 외국 지사 근무를 자처해 이집트와 사우디아라비아.인도네시아.파키스탄을 거쳐 한국에 왔다. 한국에서 가장 오래 일했다. 쉐링의 외국주재 규칙은 '4+2'다. 4년은 의무근무이고 본인이 원하면 2년을 더 체류할 수 있다. 하지만 바그너 회장은 계속 연장근무를 신청해 서울에서 10년을 보냈다. 매사에 철두철미한 독일의 조직문화보다는 가족 같은 한국의 회사 분위기가 좋았다고 말한다.

한국 쉐링은 피임약 '마이보라' 등을 생산.판매하는 독일계 회사다. 1967년에 한국지사가 설립됐다. 지난해 매출 827억원을 기록해 주한 외국계 제약회사 중 10위에 올랐다.

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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