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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산당이 노리는 것|신상초 본사논설위원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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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최근 백년을 두고 우리민족은 삼천리강산의 주인 노릇을 못해왔다. 한반도는 이른바 「극동의 투계장」으로서 청일전쟁, 노일전쟁, 2차 대전, 6·25전쟁의 전장이 되었고 그때마다 우리민족은 막대한 희생과 고통을 강요당했다. 그리고 우리민족의 운명은 열강간의 전쟁이 어떻게 판가름 나느냐에 따라 좌우되었지만 십중팔구는 대국에의 굴종과 예속을 면할 수 없었다. 그러므로 우리민족의 운명을 스스로가 결정해 우리가 우리 땅의 주인이 되자는데 대해서는 누구도 시비를 못걸 것이다.
우리는 민족자결여건의 성숙을 겁낼 정도로 쓸개 바진사대주의가 될 수 없고 객관정세 변화의 도전을 상연하게 못 받아들이는 동맥경화증에 걸려서는 안 된다.
7·4성명은 한국의 입장에서는 민족자결 여건 성숙을 평화로운 방향으로 좋게 받아들이고 무력행사를 포기하면서 대화로 남북대립의 긴장을 조금씩이나마 풀어보자는 선의의 표시이다. 한국이 북진통일정책을 버린 것은 1950연대 말부터였고 오늘의 우리의 국가안보태세가 순전히 방어·자위의 테두리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은 세계가 다 알고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공산당은 4반세기를 두고 수미일관하여 남정통이노상을 추구해 왔으며, 60년후반기에는 그것이 무력통일정책으로 표현되었음은 자타가 공인하는바 아니었던가.
그러한 공산당이 국제정세 해빙 무드에 발을 맞추어 대외적으로 해빙정책을 전개하다가 급기야 7·4성명에 동의한 까닭은 무엇인가?
나는 또 최대원인이 지금은 국제정세 상 남북분단 동결기운의 성숙을 단독으로 타파함 능력이 없으므로 대남 강경 정책을 일단 후퇴시키면서, 남정통일의 조건 성숙을 촉구하려는데 있다고 판단한다.
공산당은 7·4성명을 근거로 해서 주한미군의 철수, 통일문제의「유엔」테두리 밖에서의 해결을 추구키 위해 대규모의 정치공세·선전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공산당은 주한미군의 존재를 눈 위에 가시처럼 싫어한 탓으로 미군을 축출키 위해 또 유엔으로부터 침략자·불법집단의 낙인을 꺽힌지라 『조선 사람끼리 조선문제를 해결하자』고 하면서 통한문제를 유엔 테두리 밖으로 몰아내기 위해 갖은, 책동을 다해왔다.
그러므로 7·4성명 직후 공산당의 박성철이 이제 미군이 남한에 남아있어야 될 이유는 하나도 없으니 미군은 당장에 물러나가야 하고 통일문제는 우리민족이 자주적 입장에서 협상 해결해야 한다고 격렬한 어조로 주장한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라 그들의 속셈을 여실히 드러낸 것이다.
주한미군의 철수·한국문제에 대한「유엔」의 권능행사의 배제 등이 구현된다고 하면 남북관계는 어떻게될까? 군사적인 면, 정치적인 면에서 남북간에 세력 불균형이 벌어지고 공산당의 숙원인 남침통일의 기운이 성숙될 것은 이 싯점에서도 명야관화하다. 분단된 국가에 있어서는 공산측으로 하여금 현상동결사빈을 수락케하는데 있어서도, 평화공존을 받아들이게 하는데 있어서도 자유국가의「힘의 우위」확보를 필수불가결한 조건으로 하는 것이다.
오늘날의 동·서독은 분명히 평화공존하고 있지만 그것은 서독이 인구나 영토에 있어서 동독보다 생산력은 근 2배인데다 서독이 군사적으로는 NATO의, 그리고 경제적으로는 EEC의 힘의 뒷받침을 받고 있기 때문에 가능해졌음을 간과해서는 안된다. 서독의 동방정책 전환의기수 브란트수상은 금년 6월 하버드대학의 초빙강연에 있어서 미군의 유엔주둔이야말로 유럽의 평화를 성숙시키고 동·서독의 평화 공존을 가능케 하는 최대 조건임을 역설하였다.
미군의 주둔이 방어적인 것이라는 것은 한국의 안보정책이나 한·미방위 조약으로 보아 조금도 의문의 여지가 없다.
따라서 미군은 전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전쟁을 억제하기 위해 한국에 주둔하고 있는것으로 보아야한다. 무력행사 포기를 약속하고 대화로써 긴장풀이를 하겠다는 공산당이 「전쟁억제력」「긴장능화력」으로서 기능을 갖고 있는 미군철수부터 요구한다는 것은 정세를 완화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악화시키려는 것으로 평가치 않을 수 없다.
한국문제 해결에 대한 「유엔」의 권능배격 책동은 남북협상으로 통일문제를 해결하자고·함으로써 불법적인 침략집단이라는 낙인을 면하고, 한걸음 더 나아가서는「유엔」이 한국에 부여한 합법적인 권위를 말살하려는 수작이다. 중공의 「유엔」가입, 「유엔」 내에서의 세력 분포 등이 한국의 대「유엔」정책의 변화를 촉구하고 있음은 가릴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우리는 최소한 경찰관이 강도와 동등하게 취급될 수 없고 재판관이 범죄자와 같이 취급 받을 수 없다는 원칙만은 상황 변화 여하를 불문코 끝까지 지켜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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