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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선의 양당원로 남북성명을 말한다(상)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대담
정구영씨<전 공화당총재>
유진오씨<전 신민당총재>
▲정구영=「텔리비젼」을 통해 남북공동성명 발표를 듣고 진실로 역사적 의의가 크다고 생각했습니댜.
8·15해방 후 타의에 의해 민족이 분열되었고 또 6·25라는 민족상잔이 있어서 남북이 불구재천처럼 서로 대화없는 상태에 있다가 서로 상대방 입장을 이해하고 서로 같은 인간이며 동족이고 대화의 대상이 된다고 인정한 것은 의미가 크다고 봐요.
일부에서는 지엽말단적으로 이번 대화의 과정과 절차, 대화자의 직책이 어떠했던가 하고 불평이 있을지 모르나 그 동기나 결과를 보아 사소한 문제는 불문에 붙이고 현실에 입각한 최선의 결과를 얻은데 대해 그 노고를 치하합니다.
어느 누구가 해도 이 이상의 결과를 얻기는 어려웠을 거예요. 앞으로 신의성실의 원칙에 입각하여 꾸준하고 끈질긴 상호노력이 절실히 요청된다고 생각합니다.
▲유진오=그 발표를 의외라고 충격적으로 받아들인 사람이 많은것 같은데 나는 자연스럽게 들었어요.
그 이유는 재작년부터 국제정세로 보아 한반도에서 무력통일이 불가능하게 됐기 때문입니다.
미·소의 평화공존과 화해「무드」에다가 특히 한반도에 밀접한 이해관계를 가지고 있는 미·소·일·중공 4개국의 관계를 분석해 보면 그 어떤 나라도 자기의 힙으로 북쪽에서 남쪽으로, 또는 남쪽에서 북쪽으로 힘을 뻗치지 못하게 된 정세에 있어요.
그래서 남북이 무력으로 통일하려는 것을 용인할 수 없는 견제와 균형이 이루어졌다고 나는 생각해 왔습니다.
사실 남북 적십자회담의「템포」 는 대단히 느리지만 그 진행 과정을 보면서 우리가 모르는 중에 혹 표면접촉이 있을수도 있다고 생각해 오던 차에 이 성명을 들으니 나로서는 큰 충격을 받지는 않았어요.
이것은 이제 대화의 시작이며 대화의 종말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무력통일을 말자는 소극적인 합의가 이루어졌지 적극적인 협력이나 또는 궁극적 목표인 통일 합의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쟎아요?
그러므로 이를 새역사의 출발점으로 보고 그 의의의 중대성을 인정하는 것은 정선생과 같은 생각입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는 미지수라 하겠지요.
▲정=공동성명의 제1항은 외세의 간섭없는 자주적 통일, 전쟁아닌 평화적 방법에 의한 통일, 민족의 대동단결 이 세가지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결과적으로 한민족이 자치능력을 가진 훌륭한 민족임을 세계에 과시한 것이고 또 우리는 문화민족으로서의 긍지도 갖게 되었어요.
공존 체제로의 전환을 시도했는데 우리는 의연히 날카롭게 대립을 계속해 왔어요. 이것은 마치 속담에 『상제보다 복재기가 더 서러워한다』는 것과 같아요.
특히 강대국간에 낀 한반도의 역사적·지정학적 입장에서 볼 때 민족의 대동단결이 살길이라고 한 것이 가장 중요한 부분이 아닌가 합니다.
전체적으로 보아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최선의 내용이며 현실적으로 우리의 희망을 표현한 것이 공동성명 제1항이라고 보겠습니다.
▲유=성명을 보고 기쁘게 생각한 것은 남북이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자주적으로 통일을 이룩한다는 주체성에 대한 자신을 가진 점이었어요. 해방 후에 남한은 민주주의 그 자체만으로 공산세력에 대항하기가 어려웠고 또 6·25때 북한이 자기세력만으로 쳐들어 온 것은 아니지요.
외세에 의존하지 않고 우리힘으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민족적 자각이 이루어지고 거기에 수반되는 힘을 가진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자주적」 이란 것이 앞으로 회담의 장래에 큰 장애로 예견되기도 합니다. 즉 자주란 우리 민족만으로 하는 것이냐, 우리 민족의 주도권으로 하느냐, 우리 민족 아닌 힘을 인정하지 않느냐…등등 양쪽의 기본 입장에 차이가 있을 수 있겠지요. 우선 주한「유엔」군을 외세로 보느냐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자주란 정치적·경제적으로 침략하는 외국세력을 배격하는 것을 의미하는데 「유엔」은 우리를 침략하고 지배하려고 와 있는 것이 아니라 평화를 유지하기 위해 와 있는 것입니다. 북한은 이 점을 명확히 하고 있지 않고 종래까지 「유엔」의 힘을 배제해 왔습니다.
북한이 종래의 입장대로 「유엔」군 철수를 주장한다면 남북이 아무리 오랫동안 회담을 해도 성공하기는 어렵다고 나는 단정해요.
북한이 평화통일을 원한다면 평화세력인「유엔」의 협력을 요청하는 것이 옳습니다. 그들이「유엔」감시하의 남북 총선거를 배제할 이유는 없다고 봐요. 「유엔」군 주둔이 회담 진행에 영향을 주지 않기를 바라지만 북한이 종래 입장대로라면 어렵지 않을까 우려되는군요.
▲정=나는 이것은 그리 큰 문제가 아니라고 봐요. 틀린 생각인지는 모르나 북한이 유엔」을 외세의 일부인 듯 보는 것은 『한국은 한반도 유일한 합법정부』 라는「유엔」결의 때문에「유엔」을 꼬집고, 자기에게 불리하다고 배제하려는 잠재 심리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유엔」군이 있고 「유엔」결의가 있다 해도 종래 우리가 북한을 불법집단으로 보고 상대하지 않다가「7·4성명」으로 동족으로서 서로 논의하자는 원칙하에서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닐 것입니다. 동족이라는 전제 아래서 설득시킬 수 있다는 희망적인 견해를 나는 갖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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