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88)제26화 내가 아는 이박사 경무대 사계 여록(115)|<제자 윤석오>임병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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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외교정책>
이 박사가 일본에 대해 나쁜 감정을 갖고 있었다고 흔히들 말하고 있지만 이 박사는 사실「감정」이라기 보다는 그의 고집에서 나온 일관된 어떤「정책」을 가졌었던 것 같다.
이 박사는 일본이 수십년간 우리나라를 통치했을 뿐 아니라 언젠가는 제국에 대한 설계를 다시 계속할 것이라는 생각에서 일본을 경계하고 신뢰하지 않았다.
그러나 감정적인 편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었다.
「무초」주한부대사의 신임장 제정식 때의 일이다.
이 박사는 미국의 일부 정치지도자들과 가끔 다투는 일은 있었지만 미국이 한국의 가장 친민한 우방이며 미국을 통해 우리나라 외교의 폭을 넓혀야한다는 생각을 늘 갖고 있었다.
그래서「무초」대사의 신임장 제정을 한번 멋있게 해주라고 지시, 미 대사관 앞에서 경무대까지 기마대를 동원하여 호위하게 하고「유니폼」도 화려하게 장식토록 했다. 이례적인 이 의전절차를 취재하려고 서울에 왔던 조일·독매·매일신문 등의 기자들이 경무대를 들어가게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이 박사는 이를 일언지하에 거절 일본「매스컴」의 신랄한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한-일 회담이 처음 열렸을 때의 일이다. 나는 당시 한국수석대표로 일본을 가게 됐는데 일본측은 내가 수석대표로 온다니까 이미 내정돼있던 수석대표를「유엔」대표부시절 같이 있었고, 비교적 나와 가까왔던「사와다」대사로 교체시켜 버렸다.
내가「하네다」공항에 내려서자「사와다」대사는 너무 반가와 나를 얼싸안고「카메라·플래쉬」의 세례를 받았다.
이 사건이 일본신문에 크게 보도되자 이 박사는 매우 불쾌해 하면서 국내신문에 사진을 싣지 말라고 명령하고 기사도 조그맣게 다루라고 지시했다.
또 회담시작에 앞서 본국에서 기조연설 원고가 도착했는데 그 내용이 너무나 강경하고 위압적이어서 도저히 그대로 연설을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본국 정부에 전화를 걸고 내용을 한결 부드럽게 수정하여 연설했더니 후에 이 박사가 이러한 사실을 알고 나에게 호통을 친 일도 있다.
일반적으로 외교에는 능하다는 평을 듣던 이 박사도 외교활동을 위한 외환사용에는 아주 인색하기 한이 없었다.
1백「달러」이상의 지출은 손수 승인을 했고 기회 있을 때마다「달러」를 아껴 써야한다고 강조하곤 했다. 50년9월「유엔」총회 참석 때의 일이다.
장면·장택상·김동성씨 등 우리 대표단 일행은 뉴요크의 펜실베니아·호텔에 숙소를 정하고 수석대표인 나는 특히 외국대표들과의 막후접촉 및 지원요청을 위해 응접실이 달린「슈트」에 묵었다.
하루 방 값이 25「달러」였는데 내가 이 박사에게 도착보고를 했더니 이 박사는 대뜸『자네 든 방 하루에 얼마씩이야』하고 물었다.
그래서 나는 25「달러」라고 했더니『가난한 나라대표가 그렇게 고급「호텔」에 들면 돼? 당장 바꾸도록 해』라고 지시를 하여「이스트사이드」에 있는 하루 3「달러」짜리 싸구려 방으로 당장 옮기고 말았다.
「호텔」이야기가 나와 말이지만 하영태씨가「필리핀」에 출장을 갔다. 올 때 싸구려 YMCA「호텔」에서 묵고 귀국하여 남은 여비를 이 박사에게 반납하자 이 박사는 어린애같이 좋아하면서『이런 정직한 사람을 총리로 써야지』하면서 후에 국무총리로 임명했다는「에피소드」도 있다.
이 박사의 외교행적 중에서도 종전 전후의 이야기는 주목할만하다.
이 박사는 처음「유엔」창립총회에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연합국의 일국으로 참석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그 근거로는 ①부분적이나마 임시정부가 일본에 대해 선전포고를 한 일이 있으며 ②중국대륙 등 각지에서 실제 일본군과 전투를 했다는 점 등을 들었다.
그러나 창립총회의 사무총장인「알저·히스」가 이를 일축하는 바람에 좌절되고 말았지만 만약 이때 이 박사의 주장이 관철됐다면 한반도의 역사는 또 다른 것이 되지 않았나 생각된다.
문제의「히스」라는 사나이는「루스벨트」대통령의 외교담당특별보좌관으로 오늘날의「헨리·키신저」와 비슷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이 자가 공산당이었다는 사실은 후에 알려진 사실이다.
「스탈린」과「루스벨트」대통령의「얄타」회담 때도 이 자가 실질적으로 미국대표 역할을 담당하여「스탈린」의 조종대로 우리나라 분단을 결정하게 됐다는 것은 이미 잘 알려진 사실이다.

<편집자주=임병직씨의 글은 이번으로 끝냅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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