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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5)(제자 윤석오)|(제26화)경무대 사계(92)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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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후기 비서실>
6·25동란으로 중앙청의 내부가 불탄 뒤 중앙청에 있던 대통령실은 자연히 없어졌다. 그에 따라 9·28수복 후부터 중앙청 비서실도 경무대로 통합됐다.
평소 중앙청 건물이 일본 통치의 잔재라고 해서 탐탁지 않게 생각하던 이 대통령은 이왕 불이 난 김에 폭파해 버리라는 지시를 내렸다.
그런데 실무자들의 조사 결과 중앙청 건물을 뜯으려면 5억환이 들고 수리하는 데는 3억2천만환이 소요된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뜯는데 5억환이 든다는 얘기에 대통령은 폭파 지시를 보류했다. 그러나 예전 일본인이 지은 총독부 건물을 복원할 생각은 없었다.
그래서 중앙청 건물은 파괴와 화재의 상처를 입은 채 4·19후까지 그대로 방치되었다.
경무대로 통합된 비서실은 본관과 별관으로 나누어 졌다. 황규면 비서가 그만 둔 55년 이후 후기의 비서실 진용은 대충 이렇다.
본관에는 수석비서관 격인 유창준씨와 박찬일, 구본준 비서가 근무했고, 별관에는 이원희·최치환·이승근·홍의식·신호열씨 등이 근무했다.
56년까지는 유창준씨가 가장 중요한 면회 관계 일을 맡았으나 박찬일씨가 인계 받은 뒤 유씨는 점점 소외돼 4·19 가까이는 거의 맡은 일이 없었다.
경무대 말기에 가장 실력자였던 박찬일씨는 면회, 섭외, 각부 지시 사항까지 담당한 최고 측근이 됐다. 구본준 비서는 담화문을 담당했다.
이원희씨는 각방의 결재 서류의 결재 담당이었다. 경찰국장 출신인 최치환씨는 정보와 결재 서류를 맡았다. 이승근씨는 차익교씨 후임으로 건의서, 진정서, 탄원서 등 민원 업무를 처리했으며, 홍의식씨는 서무 담당이었다. 신호열씨는 나중에 이 박사 한시집인 「찬역집」을 번역한 분으로 한문 담당이었고, 나는 경리를 맡았었다.
당시 경호책임자는 곽영주 경무관, 경무대 경찰서장은 남태우 총경이다.
55년 이후 경무대 비서실은 외부에 대한 발언권이 퍽 강해졌다. 그전에는 대통령이 『자네들은 내사비서』라고 강조해서인지 기풍이 청렴 위주였으나 점점 분위기가 흐려졌다.
행정적으로도 환도 후에는 정식으로 비서실 직제가 생겨 행정부의 국장이던 유 비서와 전직 검사였던 이원희 비서의 경우는 정식으로 전직 발령이 나 경무대로 왔다. 그 전에 대통령의 구두 명령이면 그만이던 것에 비하면 비서실의 체통이 섰다고도 볼 수 있겠다.
발언권이 강해짐에 따라 생긴 묘한 분위기는 58년 이후 더 나빠져 비서들간에도 견제·경계가 심해졌다.
이미 그 때는 같은 비서라도 박찬일 비서 외에는 대통령을 뵙기가 쉽지 않았다. 자연히 경무대의 모든 힘이 박 비서와 곽 경무관에게로 집중했다.
그러니 당연히 다른 사람들은 불만을 갖게 되는 반면 박·곽씨는 그들에 대한 불만이 대통령 귀에 못 들어가도록 철옹성을 쌓아 견제하게 된 것이다.
말기에 비서실에선 박 비서를 부통령, 곽 경무관을 부부통령으로 부를 정도까지 발전했다.
이런 감정 대립이 노골적으로 나타난 몇 가지 사건이 있다.
한번은 「마담」의 측근이던 이무기 여사가 밖의 인심이 좋지 않다는 말을 「마담」에게 한적이 있다. 이 얘기가 곽 경무관 귀에 들어갔다. 그 직후 이 여사는 곽에게서 『당신 왜 그따위 얘기를 해. 당신 배에는 권총 알이 안 들어갈 줄 아느냐』는 호된 협박을 당했다.
4·19직후 이 박사가 하야하게 됐을 때 유창준씨와 박 비서간에 말다툼이 벌어져 박 비서가 권총을 빼 드는 일까지 생겼다.
이런 사태는 만송과 박 비서가 철저히 결탁했기 때문에 일어났다.
정치인이 이 박사를 만나려면 우선 만송의 허락을 얻어 만송이 박 비서에게 연락해야만 가능했다. 전에 만송과 황규면 비서의 사이가 「스무드」하지 못해 만송도 고생을 했고, 결국 황 비서도 경무대를 물러나게 된 경험이 있어서인지 만송과 박 비서는 철저히 상부상조했다.
자연히 이 박사와 「마담」의 어권은 만송·박마리 아내와 그들의 협조자로 울타리가 새워졌다. 그러니 대통령을 만나는 사람이면 누구나 대통령뿐 아니라 만송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렇게 해서 말기에는 대통령께 직언 할 만한 사람은 모두 대통령을 만날 수 없게 됐다.
강직한 성격을 가진 황규면씨가 다시 비서실에 못 들어오도록 꾸민 모략극은 그 대표적 예다. 곽 경무관이 허위 민주당 입당 원서를 찍은 사진을 만들어 황씨를 민주당 비밀 당원으로 몬 것이다. 황씨뿐 아니라 이런 식으로 자기도 모르는 새에 족청이나 민주 당원이 된 사람이 상당히 있다.
장관들 중에도 국사를 진지하게 처리할 생각은 않고 결재 받을 일이 있을 때면 박 비서에게 전화를 걸어 『일진이 어떠냐』고 물어 『고기압』이란 말을 들으면 오고 『저기압』이라고 하면 며칠이고 안 들어오는 사람이 있었다.
직언을 하면 이 대통령은 즉시 고치는 성미다. 그런데도 정치인이나 장관들이 이곳 저곳 눈치나 보아 『잘 돼 갑니다』고 기분만 맞추려 하니 국정이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당시는 이런 안타까움을 하소연 할 데가 없어 고재봉씨나 황씨 같이 전에 경무대에 있던 사람이나 만나면 푸념을 늘어놓고 했다. 【김상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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