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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 날벼락 맞든 말든 … 골프공 날려대는 미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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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대구시 남구 대명9동 미군부대와 인접한 주택가. 그물망을 설치했지만 골프공이 수시로 날아와 피해가 속출하고 있다. [프리랜서 공정식]

대구시 남구 대명9동 주택가는 미군부대 캠프워커( 78만3400여㎡)와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주택 300여 채는 담장과 붙어 있거나 5m 남짓한 소방도로 옆에 밀집해 있다.

 이곳 주민들은 길을 걷거나 차를 몰 때 흔히 담장을 한 번씩 쳐다본다. 부대 안 골프공이 수시로 담장을 넘어 주택가로 날아들기 때문이다. 주민 김모(45·여)씨는 “골프공이 언제 날아올지 몰라 조심한다. 걸어가는 데 뚝 떨어지고 차량·주택까지 날아든다”고 말했다. 미군 골프공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들이 잇따르고 있다. 20일 만난 주민 박모(57)씨는 벌써 두 차례나 미군 골프공이 집으로 날아들어 유리창이 깨졌다. 그는 “3년 전 한 번 유리창이 부서졌고 올봄에 또 깨져 자비로 유리창을 갈았다”고 하소연했다.

미군 골프공에 맞아 깨진 주택 유리창.

 박씨처럼 이달 2일 미군부대에서 날아든 골프공에 주차 차량 2대가 흠집이 났다. 지난 6월에도 주택가 빌라 2층에 골프공이 날아들어 유리창이 부서졌다. 지난해엔 담장 옆을 지나던 주민 앞에 공이 뚝 떨어져 주민이 이를 피하려다 다쳤다. 2011년엔 운행 중이던 차량 지붕으로 골프공이 떨어지는 아찔한 장면이 발생하기도 했다. 대구시 남구청이 공식 확인한 미군 골프공 피해는 올해 2건, 지난해 3건, 2011년 2건이다. 그러나 이 피해는 미군부대나 경찰·검찰 등으로 직접 신고하거나 피해 신고를 하지 않은 경우를 제외한 것이다. 남구청 기획조정실 황필상 주무관은 “확인 안된 피해를 감안하면 족히 수십 건은 넘는다”고 말했다. 기자가 한 아파트 옥상에서 확인한 결과 미군 골프공은 담장과 바로 붙은 부대 안 골프장에서 날아왔다. 골프장이 담장과 1~3m 공간을 두고 붙어 있어 공이 빗맞으면 그대로 주택가로 날아드는 구조였다.

 골프공 피해가 잇따르지만 미군부대의 대응은 소극적이다. 주택가 쪽 담장에 길이 80m, 높이 5~6m의 녹색 그물망을 설치했을 뿐 다른 조치는 없다. 남구청은 1년에 두 차례 미군부대 관계자와 만나 그물망을 높여 달라는 등 피해 예방책을 요구해 왔지만 미군 측의 반응은 무덤덤하다는 것이다.

 미군 골프공에 피해를 본 주민은 보상받기도 쉽지 않다. 한미주둔군지위협정(SOFA) 때문이다. 이 협정 제23조 등에는 ‘주한미군 비공무 중 피해 국가 배상절차’라는 항목이 있다. 이 항목에 따르면 피해 주민은 직접 검찰을 찾아 주민등록등본·피해확인서를 첨부해 손해 및 상해배상 신청을 해야 한다. 신청하면 검찰이 배상심의회를 열어 주한미군에 피해 사실을 알린다. 배상 여부와 배상액은 배상심의회와 미군의 협의로 결정된다.

 최근 남구청은 미군 골프공 피해 보상방법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홍보하기 시작했다. 이와 관련, 미군부대 측은 “e메일로 공식 질의해야 한다”며 즉답을 피했다.

김윤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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