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연극 연출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1948년 당시 이화여대 영문과 교수였던 박노경씨(6·25때 작고)는 대학출신 여성들을 모아 극단 「여인소극장」을 조직하여 창립기념으로 「입센」의 『노라의 집』을 연출, 공연했다. 『노라의 집』은 해방이후 처음으로 만든 여성연출가의 작품이었다는 점과 남자역까지도 모두 여성들이 맡았다는 것으로 커다란 화제가 되었고 또 성공을 거두었다.
뿐만 아니라 「인텔리」여성들이 본격적으로 무대를 밟는 계기를 만들어 준 것이었다.
한해에 4개 작품씩 연출해냈던 박노경씨와 「여인소극장」은 해방이후 정비단계에 들어갔던 당시의 연극계에서 뚜렷한 위치를 차지했었다.
연극에 관계하는 여성의 수가 결코 적지 않지만, 총감독인 연출자가 여성인 경우는 외국에서도 드문 현상으로 꼽히고 있다.
한국의 경우 박노경씨 이래 여성연출가는 한 손에 꼽을 정도다.
현재 서울의 20여개 극단에서 활약중인 전문연출가는 10여명인데 그 중 여성은 1명, 「여인극장」의 강유정씨(여인극장대표) 뿐이다.
미국에서 수업하고 돌아온 오현주씨와 이화여대 김갑순 교수가 학생극과 가끔 초청연출을 맡고 있으며 최근 미국서 연극학박사과정을 밟고 귀국한 이원복씨(서강대교수)도 연출을 맡을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그리고 현재 「하와이」「이스트·웨스트·센터」의 「케네디」극장에서 연출과 강의를 맡고있는 유인형씨는 지난 65년 귀국했을 때 『포기와 베스』 등 연출활동을 했었고 「워싱턴」에 머무르고 있는 임명규씨도 도미전에 연출을 맡았었다.
미국에는 현재 연극연출을 전공하고 있는 여자유학생이 3∼4명 정도 있으며 연극학박사과정을 밟고있는 여성이 이원복씨 외에 전이대국문과 교수 김호순씨가 있다.
그러나 국내에서의 연출가 지망생은 극소수다.
서울연극학교(드라머·센터)나 대학 연극영화과 재학생 중에는 연출전공여학생은 거의 없는 실정이며 극단에서 뒷「스탭」으로 일하고 있는 몇몇 여성이 연출가를 꿈꾸고 있을 뿐이다.
전문 연출가로 8년째 「여인극장」을 이끌고 16개 작품을 연출해온 강유정씨는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넣는 고되고 피곤한 일이지만 작품에 빠지는 멋 때문에 계속한다』고 말한다.
관객의 문제·연기자·기금난·창작빈곤 등 한국연극계가 안고있는 어려움 속에서 또 「여자이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도 적지 않다고 그는 말한다.
「세팅」·조명 등에 이르기까지 「총감독의 지시」보다는 「여자의 의견」으로 받아들여질 때가 많다는 것이다.
한 작품을 무대에 올려놓기까지는 순전한 연습만 한달 이상이 걸린다. 그러나 연출료는 「국립극단」에서만 작품당 5만원을 지불할 뿐 대부분의 극단에선 동인의 영역을 못 벗어나므로 『교통비도 안될 정도』라고 한다. 외부인사를 초청하여 연출할 경우 작품당 2∼3만원선이 보통이다. 『보수보다는 정열로 뛰어드는 곳』이라고 강 여사는 강조한다. 『한번 공연에서 한회가 될지 말지한 「호흡일치」의 순간에 맛보는 흐뭇한 보람은 어디에 비길 수 없을 만큼 귀중하지요.』 그는 첫날 공연 때는 불안해서 숨어버린 때가 많다고 했다.
『연극은 바로 인간학입니다. 모든 것을 상식이상으로 알아야하고 또 끈기가 있어야 합니다.』 작품해석은 물론 배역선정, 의상「디자인」, 조명, 화장, 무대장치, 그리고 「스탭」들간의 분위기까지도 모두 머릿속에 그려 넣고 일을 해야한다고 강 여사는 연출자로서, 특히 「캐스팅」이 가장 어려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강 여사는 연출자가 되기 위해선 기본적으로 문학과 사회학이 요구된다고 강조했다.
『연극한다는 일은 현재 세계 어디를 가도 고생이 따르고 돈을 못 버는 일입니다. 그러나 자신의 내적 충실과 예술을 하는 보람을 찾을 수 있는 곳입니다.』 「인간연구」를 위해 끈임 없이 문제를 찾아 배우고 협동한다는 점을 그는 커다란 보람이라고 꼽고 있다. <윤호미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