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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도저」에 깔리는 문화유적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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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최근 문화재보호운동이 차차 활발해지고 있다. 정부는 동산문화위신고기간을 정하여 문화재신고를 받는 한편 문화위의 해외반출을 억제하기 위하여 세관감시과에 문화재전담직원까지 두어 밀반출을 금지하고있다. 그 결과 많은 동산문화재가 신고되었고, 지난달 29일에는 일본인의 문화재반출기도를 막아 문화재보호법위반혐의로 입건하고 이조자기 12점 등을 압수했다.
그러나 부동산문화재에 대한 당국의 보호대책은 여러모로 아직도 허술함을 면치 못하고 있어 좋은 대조를 이루고 있다. 건설부와 서울시가 시공하고 있는 한강변고속도로공사가 진행됨에 따라 초기 백제의 고분군 일대가 송두리째 「불도저」에 밀려 인멸될 위기에 처해 있는가하면 팔당「댐」공사 때문에 백제시대와 그이전 선사시대의 주거유적지가 수몰직전에 있는 형편이다. 전번에 경부고속도로착공 때도 경주근처의 신라고분을 모조리 「불도저」로 밀어버린 일까지 있어 이러한 처사들은 정부의 부동산문화재에 대한 무신경을 여실히 드러낸 산 증거라고 하겠다.
사실이지 우리 나라의 도자기들은 대부분 고분에서 도굴된 것이거나 발굴된 것이다. 따라서 이런 동산문화재에 대해서는 법석을 떨면서도 그것을 본시 소장하고 있는 고분이나 선사시대유적지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것은 본말을 전도한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건설부가 현재 파헤치고 있는 천호동∼송파간 도로의 서쪽 강변구릉은 백제가 한남에 수도를 정하고 있을 당시의 유일한 유적지이며, 사적 8호인 풍납리토성과 더불어 1천5백년 이전의 백제초기고분이 밀집돼있어 학계에서 봉토로 확인한 것만도 50기에 달하고 있으며 70년에 흑도가 발견돼 학계를 놀라게 한 가락동 고분도 이 일부인 것이다. 따라서 이 고분군에 대한 학술적 발굴이 진행되면 역사학계에 큰 공헌을 할 것이요, 매장문화재도 발굴할 수 있을 것이기에 이의 보존발굴이 급선무라고 하겠다.
그런데 이 같은 사단이 발생하게된 근본동기는 건설공사의 주무부서인 건설부나 서울시와 학계 및 문화재당국과의 사이에 정전협의를 위한 거의 아무런 횡적연락이 없기 때문이라 할 수 있다.
최근 일본서 발굴되어 세계를 놀라게 한 비오의 고송총고분도 토지투기자들에 의하여 개발될 가능성이 농후한 곳이었는데도 주민들의 반대로 이제까지 남아있었던 것이다. 이 지역은 『고분이 있는 주택지』로서 토지업자들이 성황리에 매매하려던 곳이었다고 한다. 토지개발 「붐」에 따른 고분고적의 파괴는 세계 공통적인 추세이기는 하나, 외국서는 사전에 충분한 협의와 조사과정을 거치는 것이 불문율처럼 확립된 건설행정의 양식이다. 따라서 아무런 사전조치도 없이 「불도저」로 밀어붙이는 것은 묵과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겠다.
한전이 시공하고 있는 팔당「댐」공사 때문에 선사시대의 주거지들이 수몰위기에 놓이자 팔당「댐」공사에 종사하고 있는 외국인과 「프랑스」대사관 문화과 직원들이 이의 발굴을 위해 「유네스코」 등에 재정후원을 요청하고 있는데도 정부당국은 수수방관하고 있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정부는 우선 학술적인 연구조사를 가능케하기 위하여 팔당「댐」건설로 인하여 수몰되는 지역의 발굴조사만이라도 급속히 추진하여야만 할 것이다.
또 천호동∼송파간의 구릉지대에 있는 고분군도 봉토의 흔적이 얼른 알아보기 힘들뿐만 아니라 토광 내지는 적석총이기 때문에 「불도저」로 밀어버리는 것만은 삼가 주기 바란다. 각 대학의 사학과나 학술원·예술원이며 문화재보호당국은 개발「붐」에 밀려나는 사적과 유적을 구하기 위한 공동「캠페인」을 벌여야 할 것이요, 적어도 발굴연구 후에야 택지조성 등을 할 수 있도록 영향력을 행사해 주기 바란다.
정부는 동산문화재의 보호에 앞서 부동산문화재의 보호 보존대책에도 최선을 다해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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