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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출판] '카트린 M의 전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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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트린 M의 전설/자크 앙릭, 김병욱 옮김/열린책들, 9천5백원

카트린 밀레(55)와 자크 앙릭(65)은 부부다. 프랑스 파리 12구의 한 작업실에서 책 더미와 현대 작가들의 그림들에 둘러싸여 지낸다.

이 남과 여는 20여년 전부터 함께 살면서 미술잡지 '아트 프레스'를 이끌어 왔으며, 미술평론가이자 편집자.소설가.희곡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1968년 5월 운동에 앞장섰던 68세대임을 자처하는 이들은 권위주의가 다시 발흥하는 것을 두려워하고 판에 박힌 일상에 매이지 않은 것을 다행으로 여긴다.

2001년 봄, 파리는 이 부부가 각기 펴낸 책 얘기로 술렁였다. '모든 사람들의 손에 쥐여 주어서는 안 될 두 권의 책'이란 신문 제목처럼 관습을 깨는 파격이 사람들을 놀라게 했다.

아내가 쓴 '카트린 M의 성생활'은 나이 오십을 넘긴 한 여성이 털어놓은 열여덟살 때부터의 성경험이고, 남편이 쓴 '카트린 M의 전설'은 자신이 직접 찍은 부인 카트린의 누드 사진을 곁들여 전개한 성얘기다.

"가명 뒤로 숨지 않고, 죄책감도 포교의 열정도 도발 취미도 표명하지 않고, 섹스에 대한 일종의 신비화를 기도하지 않고, 복종이나 지배에 대한 혼미한 욕망을 드러내지 않고"라는 '르 몽드'지의 서평은 찬사처럼 들린다.

이미 번역돼 나와있는 '…성생활'(이세욱 옮김.열린책들 펴냄)은 카트린 밀레가 구사하는 차분하고 담담한 어조가 인상적인 책이다.

자칫 노골적이고 과격하게 들릴 성체험들을 초연하다고 느낄 만큼 평온하고 일관되게 이야기한다. 여성으로서 평생 자기 몸을 어떻게 사용했는지에 대한 객관적 묘사는 미술평론가답게 시각적이다.

사랑의 행위는 그에게 나이를 먹는 몸이 죽음에 이를 때까지 그칠 수 없는 숨쉬기와 같다. 그는 겉치레와 청교도적인 위선을 걷어치우고 말한다.

"일체의 혐오감을 뛰어넘어 섹스를 한다는 것, 그것은 억눌려 참는 것과 같이 아래쪽을 지향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선입견을 넘어 그 위로 올라가는 것이다."

아내의 책과 짝을 이루는 남편의 책 '…전설'은 그런 카트린을 눈으로 만지는 또다른 사랑의 행위이자, 이미지에 대한 철학적 성찰이다.

"나는 이미지라는 말의 어원이 '이중적인 과일'일 거라는 글을 어디선가 읽은 적이 있다. 선악과(善惡果) 말이다."

육체가 지닌 생의 밀도를 포착하려고 사랑하는 아내의 몸에 카메라를 들이댄 자크는 "여자란 참으로 대단한 건축물 아닌가!…내가 살고 있는 이 세계 자체에 다름 아닌 이 여자의 육체와 더불어 나는 평화롭다"라고 쓴다.

철학자 발터 벤야민이 자살한 스페인 국경의 포르 부 기차역에서 찍은 누드 사진에서 카트린은 명상하듯 눈을 감고 있다. 무심하게, 고요하게, 서있는 아내를 보며 남편은 생각한다.

"우리를 고취시키고 나를 살게 하는 공백…알몸은 무(無)의 기호요, 결여가 아니라 충만이다. 낙원에서 추방되기 전의 육체들은 투명했다. 오직 셔터의 찰칵거리는 소리만이 과거.미래.삶.죽음을 동일한 망각 속으로 되돌려 보낼 것이다." 애정의 본능(에로스)과 죽음의 본능(타나토스)이 만나는 순간이다.

정재숙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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