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까지 … 케네디에 빠진 일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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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럴라인 케네디 주일 미국대사(왼쪽)가 20일 아베 신조 총리와 악수하고 있다. [도쿄 AP=뉴시스]

20일 낮 12시반 일본 도쿄 나가타초(永田町)의 총리 공관.

 지난 15일 신임 주일 미국대사로 부임한 캐럴라인 케네디(55)가 들어서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반색하며 손을 맞잡았다. 회담 내내 아베 총리의 얼굴에선 미소가 끊이지 않았다. 캐럴라인은 미국의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장녀다.

 아베:어제 신임장 제정 모습은 저도 TV로 봤습니다. 대사의 신임장 제정에 그렇게 많은 인파가 몰린 건 아마 처음일 겁니다. 그만큼 일본 국민의 기대가 큽니다.

 케네디:어제 신임장 제정식은 말 그대로 미·일 관계의 깊이를 보여준 겁니다. 따뜻하게 환영받은 걸 영광으로 생각합니다.

 아베:필리핀 태풍 복구작업에 지금 일본의 자위대 1000명이 파견돼 미군과 협력하고 있죠. 2년 전(3·11 동일본대지진 당시) ‘도모다치(친구) 작전’에 2만 명의 미군이 구조활동을 해 준 것을 참고하려 합니다.

 아베는 면담이 끝나자마자 공관 내 별도 방으로 장소를 옮겨 케네디 대사와 점심식사를 함께 했다. 총리가 대사를 식사에 초청하는 건 이례적이다. 여성 각료인 이나다 도모미(稻田明美) 행정개혁상, 모리 마사코(森雅子) 소비자담당상까지 배석했다. 이 또한 극히 이례적이다. 이날 오후 1시30분으로 예정된 국회 참석을 감안할 때 빠듯한 일정이었지만 아베 총리가 “식사까지 같이 해야 한다”며 밀어붙였다고 한다. 22일이 케네디 전 대통령의 사망 50주기인 만큼 그 전에 부임 일정을 마무리하도록 케네디 대사를 배려한 것이다. 국회 개회 7분 전인 오후 1시23분까지 아베는 케네디 대사와 자리를 함께했다. 케네디 대사는 이날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상과의 접견도 마쳤다. 일 언론들은 “일·미 동맹의 중요성을 감안해 신임 미국대사에게 특별대우를 하는 것”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부임 한 달여 만에 신임장을 제정하고, 5개월여 만인 지난주에야 총리를 면담했던 이병기 주일 한국대사와 비교하면 분명 이례적이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하기 힘든 부분이 많다. 케네디의 전임자인 존 루스 대사도 자민당 정권이었던 2009년 8월 19일 부임한 뒤 하루 만의 신임장 제정, 엿새 만의 총리 면담(당시 아소 다로 총리)이란 특급대우를 받았지만 케네디와는 ‘질적’으로 큰 차이가 난다. 루스 대사가 마차를 타고 왕궁(일본에서 황거)에 들어갈 때는 환영인파는커녕 보도조차 안 됐다. 총리 면담도 단 10분 만에 끝났다. 물론 식사도 없었다.

 일본의 한 언론사 간부는 “마차를 타고 황거에 들어가는 케네디 대사를 환영하기 위해 4000명이 넘는 인파가 몰리고 방송사들이 생중계를 하며 열광하는 모습은 명문가를 동경하고 신봉하는 일본인 특유의 가치관을 보여준다”며 말했다. 아베 총리의 파격적인 대접도 “케네디와 같은 정치 명문가 출신이란 공감대가 깔려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보수 성향의 산케이(産經)신문은 20일 아예 “케네디 가문은 ‘미국의 왕실’에 빗대어지는 만큼 천황폐하(일왕)에 대한 신임장 제정은 마치 왕실외교의 느낌이 났다”고 스스로 해석하기도 했다. 20일에도 일본 TV와 신문들은 케네디 가문의 족보부터 시작해 1986년 신혼여행차 나라(奈良)에 왔을 당시 케네디 대사가 디스코 음악에 맞춰 절에서 춤을 춘 이야기 등 시시콜콜한 화제까지 특집기사로 도배를 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연구소장은 “일본에서는 아베, 호소카와(細川), 하토야마(鳩山) 가문이라 하면 일단 정치 명문가로 접고 들어가 존경한다”며 “그보다 더한 세계적 정치 명문가의 딸이 일본대사로 부임하니 한없는 동경심을 품고 있는 듯하다”고 지적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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