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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여래」와 돈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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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화폐 도안이 시비가 되고 있다.
신권 1만원 짜리 지폐에 불상을 넣은 것이 좋으냐 나쁘냐 하는 문제.
일부 기독교도들의 불만은 『불교국의 인상』을 준다는데 있다. 지폐에, 그것도 최고 단위의 화폐에 하필이면 불국사와 석가여래상을 넣을 필요가 무엇이냐는 것이다.
한편 불교도들이라고 그 도안에 만족하지 있는 것은 아니다. 모든 욕심의 「심벌」이나 다름없는 돈에 하필이면 「제행무상」의 불타를 모실 이유가 무엇이냐고 반문한다.
그러나 발권 당국의 뜻은 전연 다른 데에 있었다. 국보 문화재로서의 그 진가를 발현시켜 보자는 것이라고 말한다.
결국 이들의 시비는 『도안 재검토』로 낙찰되었다. 1만원 권 발행의 경제적 측면 보다 오히려 그 도안에 따른 종교 시비로 번진 것은 고소를 짓게 한다.
미국의 경화를 보면 반드시 『In God We Trust (신은 신임한다)』라고 새겨져 있다. 무신논자들이라고 이 돈을 던진 일은 없었다. 「달러」 지폐에도 「워싱턴」, 「제퍼슨」, 「링컨」, 「잭슨」…등 대통령의 초상들이 권직에 따라 그려져 있다. 그 중에는 별로 인기가 없던 「그랜트」 대통령 같은 사람도 끼여 있다.
영국이나 그 연방국들의 화폐엔 으레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초상이 나온다. 왕관을 쓴 그의 젊은 모습은 영국의 나이(?)를 의심하게 한다. 「네덜란드」의 화폐에도 여왕이 그려져 있다. 이 나라는 왕국답지 않게 「율리아나」여왕의 『아주머니』같은 모습을 그려 넣고 있다. 역시 평화국의 수수한 인상이랄까. 「오스트리아」화폐는 「요한·슈트라우스」의 초상을 보여준다. 예술국의 긍지를 내세운 것이리라.
지난해 10월 영국에서 새로 발행된 5「쉴링」짜리 「코인」엔 「윈스턴·처칠」 초상이 새겨져 있었다. 영국 「돈」에 평민의 얼굴이 나온 것은 역사상 별로 없었다. 17세기에「올리버·크름웰」이 한번 있었을 뿐이다.
「에이레」와 같은 나라는 돈에 자연을 그려 넣기도 한다. 「버마」의 「공작」, 「실론」의 「코끼리」, 인도의 「호랑이」 또는 「웅우」 등도 있다.
그러나 어느 화폐든 한가지 공통된 것이 있다. 「위엄」과 「영광」과 「평화」의 「심벌」이 숨어 있는 그것이다. 세계대전 이후 호전국의 화폐들도 주로 「평화」의 상징으로 바꾸어 놓았다.
우리 나라의 화폐에 불국사와 「석가여래」상을 그려 넣는 것을 굳이 이 구도의 부릅뜬 눈으로 보려는 것은 너그럽지 못하다. 또 그것을 「부정」으로 판단하려는 것도 불교도답지 않은 편협한 심리의 발로인 것 같다.
때로는 국보 중에서 아름다운 예술품을 선택하는 것도 별 무리는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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