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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8)<제26화><경무대사계>(45)황규면<제자 윤석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대통령을 모시고 간 사람은 이철원 공보처장, 나, 김장흥 총경과 경호원, 그리고 임시관저에 있던 김옥자씨 뿐이다. 여관에 따로 들었던 고재봉·김광섭 비서에게는 급하게 서두르는 통에 연락조차 못했다.
목포로 가는 길은 내가 안내하기로 했다. 입었던 군복 그대로 선두 호위 차에 올라탔다. 억수같이 쏟아지는 빗속을 뚫고 우리 차는 이리로 향했다. 뒤에 오던 호위 차는 고장이나 더 따라오지 못했다.
험한 길을 달려 한시간 남짓 후에 이리 역에 도착했다. 경호 차가 고장 나 경호 경찰과 헤어지게되고 길도 나빠 자동차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철원 공보처장과 김 총경이 차에서 내려 이리역장에게 대통령을 모실 기차 편을 내달라고 청했다. 그러나 이쪽의 기차는 모두 교통부장관이 「컨트롤」하기 때문에 안 된다는 것이었다. 김 총경이 철도전화로 대전에 연락했다. 김석관 교통장관은 기관차가 틈이 나는 대로 열차를 보낼 테니 기다려달라고 했다.
어느새 아침이 되자 모두 시장기가 도는 모양이었다. 이박사도 요기를 했으면 하는 눈치였다. 내가 나가 역 주변을 살펴보았으나 배부를 만한 것이 없었다. 할 수 없이 구내매점에서 과자를 있는 대로 좀 샀다.
이 박사는 이것을 보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단숨에 다 들었다. 『거참 맛있군. 괜찮은데….』
우리일행은 이리역사에서 정오 가까이 까지 기다렸다. 드디어 3등 열차를 한간 단 기차가 도착했다.
밤을 새우고 아침 요기도 못한 추한 행색으로 기차를 타고 목포로 달렸다. 두 시간이 좀 지나 목포에 도착했다. 즉시 김 총경이 해군경비사령부를 찾아갔다. 당시 사령관은 정경모 대령이었다. 대통령을 모실 배를 비밀히 내달라는 이야기를 들은 정 대령은 무척 의아해 했다고 한다. 상부로부터 연락이 없었으니 그럴 수밖에 없었으리라. 더욱이 별의별 유언과 오열도 많을 때이니까. 『위에서 연락을 받지 못했습니다.』
『사정이 급해 그렇게 됐으니 정 대령께서 협조해 주셔야겠읍니다.』
『지금 대통령각하는 어디에 계십니까.』
『목포 역에서 좀 떨어진 곳에 기차를 세워 놓았습니다.』
『어쨋든 그리로 가십시다.』
정 대령은 김 총경과 우리 기차가 서있는 곳으로 달려와 대통령을 만났다.
『조용히 부산으로 가고 싶은데 자네가 좀 수고해주게.』
『예, 곧 준비하겠습니다, 점심은 드셨읍니까.』
『이판에 무슨 밥을 먹어.』
배를 준비하러 급히 사령부로 되돌아가는 정 대령의 「지프」를 타고 나는 역전다방에 가「코피」를 사고 가게에 들러 빵과 「토마토」를 샀다. 3만원 남았던 돈이 이제는 모두 떨어졌다. 대통령은 이것을 자시며 연방『맛있다』고 칭찬했다. 「마담」은 「토마토」를 하나 들고는 밀어냈다.
잠시 후에 정 대령이 목포유지로부터 빌었다는 「시볼레」승용차를 몰고 기차로 왔다.
대통령은 남의 눈에 띄지 않도록 검은 안경과 흰 모자를 깊이 눌러쓰고 목포경비사령부로 달려갔다.
비는 그 동안 부슬비로 바뀌었다. 연락을 받고 성능이 가장 좋다는 5백t급의 514함정(정장주철규 대위)과 3백50t급의 307함이 선창에 닿은 것은 4시가 넘어서였다. 우리는 이 514함에 올랐다. 307함도 호위를 위해 따라나섰다.
그날 따라 비가 오는 날씨여서 바람이 셌다. 파도는 사납기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배를 타고 조금 지나자 「마담」이 뱃멀미를 시작했다. 변변히 요기도 못했으면서 계속 토해냈다. 수행원들도 하나 둘 배 멀미로 늘어졌다.
계속 꿋꿋하게 정좌하고 있는 사람은 우리일행중 대통령밖에 없었던 기억이다.
배 타기를 좋아하고 낚시를 즐겼기 때문에 별로 배 멀미를 않는 것을 알았지만, 이런 파도에서도 꿋꿋이 버티는 기력에 새삼 놀랐다.
수행원들이 모두 늘어지자 이 박사는『아랫배에 힘을 주면서 어머님의 인자하셨던 일을 생각해봐. 그러면 속이 좀 가라않을 걸세.』 역경에 처했을 때 어머니의 회고가 약이 되는 것인지는 몰라도 토하거나 신음하는 소리는 없어졌다.
함정에서는 특별한 준비가 없었다고 군인들의 보통 식사에다 「에그·스크램블」을 곁들여 대통령식사를 가져왔다.
밥이라고 해야 쌀보다 보리가 더 섞인 꽁보리밥이었지만 이 박사는 가져온 식사를 한 톨 남기지 않고 모두 치웠다. 그러면서 수행원들에게 『이런 때일수록 많이 먹어야 해』하고 권했다. 그래서 수행원들은 억지로 요기를 했다.
이런 고생스런 항해 끝에 우리는 다음날인 2일 상오11시 부산부두에 도착했다. 부두에는 해군경비사의 연락을 받고 심성봉 경남지사와 미국상사의 고문으로 있던 갈홍기씨가 회사 차를 갖고 나왔다. 임시관저로 정해진 경남지사관사에 도착하자마자 이대통령은 신 국방에게 전화를 걸어 전선상황을 보고 받았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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