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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벽각화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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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흡사 원시 시대의 벌판을 내다보고 있는 것 같다. 수상쩍은 짐승들이 웅성거린다. 얼른 그 이름도 생각해 내기 힘든 모양들을 하고 있다. 사슴을 닮은 형상인데 꼬리가 유난히 길다. 멧돼지 같기도 한데, 다리는 그것이 아니다. 이런 크고 작은 동물들이 암벽을 메우고 있다. 저마다 형상도 또렷해서 마치 생동하는 것 같다. 폭 8m, 높이 2m의 큰 「스케일」이다.
이 암벽각화는 울산의 한 공업용 저수지에서 발견되었다. 한 겨울의 가뭄으로 저수지의 수위가 내려앉자, 홀연히 이 원시의 벽화가 나타난 것이다. 이제까지는 물에 잠겨 있었다.
필경 이 암벽은 선사 시대엔 강 안이었을 것이다. 원시인들은 그 수맥에 이웃해서, 이 암벽을 바람 맞이로, 생활의 터전을 마련하고 있었을 것이다.
어느날 그들 원시인 중에 누군가가 불현듯 자신의 생활이 얼마나 따분한가를 알게 되었을 것이다. 나날이 쫓기는 생활 속에서 내일에의 신념도 깊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선천적으로 예술적인 영감을 갖고 있었을 것이다. 태초의 인간에게도 있었음직한 그 운명적인 불안을 달래는 한 주술적 표현으로 그는 조각을 시작했을 것이다.
고고학자들은 이 암벽각화의 연대를 아직 분명하게 추측하지 못하고 있다. 열쇠는 그 암벽을 쪼아낸 도구가 무엇이냐에 숨어 있다. 그것이 타제 석기일 때와 마제 석기일 때의 연대는 차이가 난다. 전자는 석기 시대의 초기이며, 후자는 중기 이후로 추측할 수 있게 한다.
그러나 그 도구가 금속제라면 연대는 훨씬 가까워진다. 금속 문화는 기원전 7세기쯤에서 그 여명을 찾을 수 있다. 신석기 시대는 이보다 아득히 앞선 기원전 2, 3천년부터 시작된 것으로 추측한다.
한민족이 역사의 무대에 등장한 연대는 정확히 헤아릴 수 없다. 신석기 시대의 유적이나 유물은 전국의 곳곳에서 때때로 발견 되었었다. 이것은 이미 기원전 70세기부터 이 반도에서 한민족이 활발히 뛰어 다니며 살고 있었던 것을 알 수 있게 한다.
그러나 역사가 긴 민족으로서 우리의 조상인 신석기 시대인들이 남겨 놓은 예술의 흔적이 적막한 것은 어딘지 역사에의 단절감을 깊게한다. 만주 지방에선 그런 흔적들이 비교적 풍성하게 발굴된 기록들을 볼 수 있다. 역사의 흐름으로 보아 우리라고 그런 흔적이 말끔히 마멸되었을 리는 없다. 공업 용수의 저수지 속에서 암벽각화가 발견된 형편이니 말이다.
새삼 그 벽화는 몇 천년전의 우리 조상이었을 신석기 시대인의 손을 어루만지는 듯한 감동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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