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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억 강징한 과잉 충성과 광적 아부|김일성 환갑-미쳐날 뛰는 조총련|동경=조동오 특파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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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김일성의 혹-
이곳에 배부되는 북괴 신문이나 화보에 나오는 김일성의 사진은 언제나 목덜미 부분이 깨끗이 수정되어 아무 이상도 눈에 띄지 않는다. 작년 9월 미농부 동경 도지사의 평양 방문에 동행한 NHK 특파원이 찍은 TV가 방영될 때 그의 목에는 직경 8cm는 넘을 커다란 혹이 비쳐짐으로써 그의 사진이 수정되어 보도 되어온 수수께끼가 풀렸다.
지난 2월 「삽보로」 (찰황) 「올림픽」때 「프레스·센터」에서 조총련계 조선 통신 사장 이형구에게 한국 특파원단에서 「김일성의 혹」이 명료하게 찍힌 NHK, TV 복사 사진을 제시하자 겸연쩍은 웃음으로 그 사진을 들여다본 조총련계는 그것을 혹이 아니고 살이라고 우겼다.

<목의 「혹」을 살이라고>
그러나 곁에 있던 일본인 기자들이 『그것은 혹』이라고 「판정」했다. 오는 4월15일은 그 김일성의 환갑이란다. 일제 시엔 일본 천황의 생일을 천장절이라고 해서 공휴일이었는데 일본이 민주 정체로 바뀐 후에는 천장절도 자취를 감춘지 오래다. 일본 곳곳에서 김일성의 환갑 잔치를 받든 조총련의 광적인 움직임이 넘쳐흐르고 있다. 견디다 못한 일본 공산당은 지난 3월11일 기관지인 「아까하다」를 통해 『「닉슨」의 중공 방문·「뱅글라데쉬」 문제 등 중요한 국제 문제가 연이은 이때 국제 우호 운동의 상대국과의 사이에 갖가지 문제로 의견의 차이가 생기는 것은 흔한 일이다.
차제에 상대국 정부의 외교 정책이나 방침의지지 운동 또는 상대국 지도자의 숭배 운동이 되거나, 지도자의 생일에 관한 행사를 위한 협찬이나 예찬 등이 일본의 우호 운동에 끼여드는 것을 엄격히 저지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무서명 논문을 싣고 조총련의 김일성에 대한 과잉 충성과 대규모의 모금 운동 같은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것을 타국인 일본 땅에서 저지른 북괴의 몰상식을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더욱 조총련이 총 동원되어 김일성 환갑을 들추는 것은 고사하고 이른바 일조 우호 상사·좌경 작가·좌경 법률가 등 주체를 잃은 북괴 「로비이스트」에게 김일성에 대한 찬사와 축하 「메시지」·축하 물품을 강요함으로써 조총련에 대한 빈축은 절정에 이르렀다. 일본 공산당이 전기 사설을 싣게된 것도 「협찬」을 상의 받은 고정의 표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일제 때 징용으로 일본에 건너와 광부로 일하던 조총련 의장 한덕수·부의장 김병식이 김일성에 대한 과잉 충성으로 명맥을 유지한다는 것은 이곳 교포 사회에서 널리 알려진 일.
김병식은 일본에서 김일성 전기를 영문으로 인쇄, 「뉴욕·타임스」 등 외국의 유력지에 광고를 냈다는 공로 때문에 북괴로부터 「국기 훈장」이란 일급 훈장을 탄 후 일본인을 움직여 김일성에 대한 영사를 받아 그들의 기관지에 크게 게재하는 것을 본업으로 하고 있다.

<일인 움직여 김에 찬사>
지난 2월20일 횡빈 부두를 떠나 북괴 남포항에 닿은 조총련계 무역선 「동해」 호에는 조총련이 김일성의 환갑을 위해 일본서 강제로 모은 값진 물건들이 들이찼다. 한덕수는 구금으로 만든 한 식기 두 「세트」를 보냈다. 조선 왕조에서 쓴 식기도 은제였다면 백금은 봉건 시대의 왕보다도 호사로운 것. 조총련 중앙 본부는 「필름」 제조·오프셋 인쇄 등 3개 공장 설비를 기술자의 강제 북송까지 시켜 가면서 보냈다.

<쥐어짜기 식의 모금>
비용은 일화 20억원. 조총련 대판 본부는 김일성 집의 가구·장식품으로 1억5천만원, 동경 본부는 내각의 수상 집무실의 가구·장식품 일절 1억3천만원, 동경 본부는 북괴 노동당 총 비서실의 가구·장식품 1억3천만원. 집과 사무실 차림에 1억 이상을 쓰는 김일성에 대해 조총련 교포간에서 「경애심」이 나날이 줄어든다고 하니 효과는 백%. 일본의 북괴 거래 상사도 강제로 돈을 냈지만 조총련계 교포가 2천명도 안 되는 「니이가다」 (신석) 같은 곳에 배당이 5천만원. 국민학교 등 각 기관에는 최하 1백만원씩 강제로 징수하여 총액은 50억여원으로 추산된다.

<빚져 가며 내는 업체도>
이런 물건들은 동경도 오오지 (왕자)에 있는 체육 회관에 모아져 한덕수 자신이 검사해서 마음에 안 드는 것은 다시 전국 각지에 보내 재제시키는 극성이었다. 북송 가족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는 북송된 가족의 처우에 대한 위협, 상공인들에게는 은행 융자금의 반환을 미끼로, 집단 생활하는 조총련계 교포에게는 인근 간부들의 협박으로 김일성 환갑 성금이 모아졌다. 북륙 지방에서 「파찡꼬」 집을 경영하는 어느 상공인은 배당된 5백만원을 만들려고 새로 빚을 져야만 했다.
이런 호화로운 잔치에 대한 비난은 이제 최고조에 이르렀지만 동해호 편에는 조총련계 교
포가 모두 한 바늘씩 누빈 「김일성 원수 만수 무강」이란 자수가 실려졌다. 이것은 일제 때 출정 군인에게 가족·친지가 만들어준 「센닝바리」(천인침)의 재판이 아니겠느냐는 폭소거리.

<환갑 기념관도 세워>
벌써 북괴는 「김일성 환갑 기념관」까지 만들고 북괴에는 최고의 아부자인 조총련이 강제로 모아 보낸 물건들을 영구 보전하기로 했다고 전해지고 있다.
지난 3월17일 신석항을 떠난 북송선 만경봉호에는 강제로 북송되는 조선 대학생 97명의 찡그린 얼굴이 보였다. 머리에 감은 적색 수건, 가슴에 단 붉은 헝겊에는 「김일성」에 대한 충성이 쓰여져 있다. 이들은 일본 남쪽 장기에서 신석까지 「오토바이」로 달리면서 김일성 생일을 일본 곳곳에 고지하고 다녔다. 조총련의 각급 학교에도 김일성의 생일을 만세로 엮은 「애드벌룬」이 올려졌다. 일본에서는 아직도 천황제가 견지되고 있지만 천황의 생일이라고 해도 이렇듯 요란하지는 않다. 남의 땅에서 김일성의 생일을 과대 광고해서 그들은 전진보다 후퇴의 인상만 심어주는 것이다.

<신의 버린 재 입국 허가>
더욱 조총련은 부의장 이계백을 단장으로 한 13명의 김일성 생일 축하단을 편성, 3월20일 출발, 4월15일 식전에 참석하고 6월20일 귀국이라는 일정까지 짜놓고 일본 법무성에 북괴 방문 후의 재 입국을 신청했다. 일본 정부가 이 신청을 거부할 자세를 보이자 사회당 소속 의원들, 일조 의원 연맹의 의원들, 이른바 자유 법조인단 등을 통해 일본 정부에 대한 압력 공세를 펴고 동시에 일본 국회 의사당과 수상 관저 주변에서 매일 「데모」를 벌였다.
그러나 처음에 이것을 거부했던 일본 법무성은 19일 하오에 조총련 부의장 이계백을 포함 한 김일성 환갑 축하단 6명을 포함한 18명의 조총련계 교포들에게 북괴 방문 후 재 입국을 허가, 한국에 대한 신의를 저버리고 말았다. 조총련의 「데모」가 연달자 좌등 수상은 『입국에 편의를 봐줄 터이니 재산을 다 정리해서 아주 가줬으면 좋겠다』고 이들이 일본 땅에서 없어지기를 희망했다고 알려졌었으나 끝내 허가해준 것이다.
일본은 「혹」을 보고 「살」이라고 우기는 사람들이 괴수인 김일성의 생일을 들먹여 찬양 축하의 광포 행진을 벌이는 가운데 휘말려 재 입국을 허가함으로써 같이 춤추는 곁과를 빚어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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