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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혈병 어린이 배트맨 꿈을 이루다 … 샌프란시스코가 만든 가을의 기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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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15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시청 앞에서 군중을 향해 주먹을 치켜든 ‘어린이 배트맨’ 마일스 스콧. 백혈병을 앓는 스콧을 위해 시민 1만3000여 명이 깜짝 쇼에 동참했다. [샌프란시스코 로이터=뉴스1]

15일 오전(현지시간) 미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시의 ABC7 방송에서 긴급 속보가 흘러나왔다. 앵커가 “오늘 뉴스는 샌프란시스코 할렘가의 범죄 소식으로 시작하겠습니다”라고 방송을 시작하자 곧바로 샌프란시스코 경찰서장 그레그 수르가 화면에 나타나 다급한 소리로 ‘영웅’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지금 와서 우리를 구해줘요. 우리에겐 망토를 두른 영웅이 필요해요!” 급박한 상황에 맞지 않게 익살스러운 윙크까지 보내며 수르가 애타게 찾은 이는 바로 ‘어린이 배트맨(Batkid)’. 북부 캘리포니아에 살고 있는 다섯 살배기 마일스 스콧이 바로 악의 무리로부터 샌프란시스코를 구할 주인공이었다.

 만우절도 아닌 이날 현직 경찰서장까지 동원된 이 법석은 사실 난치병 어린이를 돕는 자선단체 메이크어위시 재단이 스콧을 위해 마련한 특별한 행사였다. 생후 18개월 때 백혈병 진단을 받고 지난 6월까지 화학요법 치료를 받으며 투병한 스콧의 소원은 바로 수퍼히어로 배트맨이 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를 위해 재단이 기획한 행사에 자원봉사자를 비롯한 시민 1만3000여 명과 시 당국, 경찰, 검찰, 언론까지 시 전체가 동참해 스콧을 진정한 정의의 사도로 만들어줬다.

 이날 행사는 스콧과 가족에게도 철저히 비밀로 부쳐졌다. 배트맨 망토와 마스크를 사러 샌프란시스코에 오는 줄만 알았던 스콧은 갑자기 자신을 배트키드라 부르며 열광하는 시민들을 보며 처음엔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행사에서 수퍼히어로 흉내를 전문으로 내는 성인 배우가 배트맨 복장을 하고 “스콧, 어서 위험에 빠진 시민들을 구해야 해!”라고 독려하자 이내 상황에 몰입돼 도시 곳곳을 누비기 시작했다.

 먼저 러시안힐에 간 스콧은 케이블카 트랙에 가짜 플라스틱 폭탄과 함께 묶여 있던 젊은 여성을 구해냈다. 곧이어 경찰과 함께 근처 은행에서 강도 짓을 하고 있는 악당 ‘리들러’를 찾아 때려눕혔다.

  캘리포니아 검찰은 스콧에게 감사하는 내용의 성명을 내고, 리들러를 기소하겠다고 밝혀 흥을 더했다.

  AP통신은 “스콧이 가는 곳마다 도로가 통제됐지만, 불평하는 시민은 한 사람도 없었다”고 설명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도 동영상 메시지를 보내 “어서 가서 도시를 구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영웅’은 마지막으로 샌프란시스코 시청 앞에서 시민들 앞에 섰다. 이 자리에서 에드 리 시장은 ‘샌프란시스코 시로 향하는 열쇠’를 스콧에게 선물로 주며 “샌프란시스코가 위험에 빠지면 하늘에 배트맨 조명을 비춰 배트키드를 소환하겠다”고 말했다. 또 이날을 ‘영원한 배트키드의 날’로 선포했다. 이에 스콧은 주먹을 쥔 손을 번쩍 들어 군중의 환호에 답했다.

 행사의 대미는 지역 유력지 샌프란시스코 크로니클이 장식했다. ‘고담시 크로니클’로 제호를 바꾼 특별호 수백 부를 발간하고 스콧의 활약상을 다뤘다. 고담시는 영화 배트맨의 배경이 된 도시다.

유지혜 기자

투병 다섯살 스콧 소원 들어주려
도시 전체가 '배트맨 놀이' 연출
오바마도 "도시를 구하라" 동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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