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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의 이름으로 … 노동교화제 폐지한 시진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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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오른쪽)이 1980년대 초 아버지 시중쉰 전 부총리와 함께 한 모습. 노동교화소에 구금됐던 시중쉰은 1978년 복권됐다. [중앙포토]

1962년 10월, 아홉 살의 중국 소년 시진핑(習近平)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소식을 접했다. 평생 큰 나무처럼 자신의 그늘이 돼줄 것 같던 아버지 시중쉰(習仲勳·1913~2002년)이 반당(反黨)분자로 몰려 쫓겨났다는 내용이었다. 마오쩌둥(毛澤東) 주석을 비판했다가 실각한 펑더화이(彭德懷) 전 국방부장을 두둔한 것이 화근이었다. 국무원 부총리였던 시중쉰은 강등돼 뤄양(洛陽)의 트랙터 공장으로 쫓겨갔고, 문화혁명(66~76년) 기간 대부분 베이징의 노동교양수용소(노교소)에서 강제노동을 해야 했다.

시진핑 역시 공산당 고위 간부 자제들이 다니던 베이징의 학교에서 소년관리소라는 교화시설로 옮겨졌다. 이후 산시(陝西)성 산간 오지의 토굴 속에서 고된 노동에 시달렸고 베이징으로 도망치다 붙잡혀 또다시 강제노역을 당했다.

 한겨울에 맨발로 일하고 등잔불 아래서 책을 읽으며 와신상담하던 시진핑은 78년 부친이 복권될 무렵 베이징에 돌아왔다. 자신과 아버지가 겪은 고초의 경험은 시진핑을 단련시킴과 동시에 그에게 인권을 무시한 강제노동에 대한 문제의식을 심었다. 이후 중국 최고 권력자가 된 시진핑 국가주석 겸 당 총서기는 56년간 유지해 온 노교소 제도를 15일 공식 폐지했다.

시 주석이 문화혁명 기간인 1969년부터 약 7년간 생활했던 산시성 옌촨현의 토굴 내부. 시 주석은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하고 이곳으로 끌려와 중노동을 경험했다. [중앙포토]

 중국 공산당은 이날 관영 신화통신을 통해 발표한 ‘전면적 개혁심화에 관한 중대 문제 결정’이란 문건에서 “범죄자에 대한 처벌 규정을 개선하고 사회제도를 완벽하게 구현하기 위해 노동교화제 폐지를 결정했다”고 발표했다. 12일 막을 내린 18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3중전회) 결정 사항의 주요한 개혁 조치 중 하나다.

 중국의 노동교화제는 공안 등 당국이 특정인에 대해 위법 행위가 있다고 판단할 경우 재판 없이 최장 4년간 노교소에 가둬놓은 채 강제노동과 사상교양을 시키는 처벌이다. 중형임에도 중국 형법엔 명시돼 있지 않은 일종의 행정처벌 성격이다. 57년 이 제도가 실시된 이후 인권 침해와 공권력 남용의 대표적 사례로 중국 국내외에서 비판받아 왔다. 특히 반체제 인사와 정치적 반대파들을 무단으로 노동교화소에 잡아들여 고문·폭행한다는 폭로가 이어져 왔다. 현재 중국 전역에 350곳의 노교소가 있다고 한다.

 지난해 11월 시진핑이 총서기에 오른 이후 노동교화제 폐지가 본격적으로 논의돼 왔다. 올 1월 멍젠주(孟建柱) 중앙정법위 서기가 시 주석의 재가를 받아 노교소를 없애기로 했다고 중국 매체들이 보도했다. 하지만 이를 비준해야 할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선 관련 논의가 쑥 들어갔다. 노교소 폐지가 장쩌민(江澤民) 전 국가주석 등 보수파의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는 서방의 보도들이 흘러나왔다. 과거 통치자들이 반대파를 탄압하는 용도로 노교소를 활용해 왔는데 이를 폐지하면 자신들의 정당성이 훼손되고 정치적 역공격을 받을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올 들어 노교소들이 사실상 운영을 중단하는 움직임이 시작됐다. 파룬궁(法輪功) 수련자들을 박해해온 혐의를 받고 있는 선양(瀋陽)시 마싼자(馬三家) 노교소가 올해 새로운 수감자를 받지 않고 있다는 보도가 나왔다. 광둥성 당국도 광저우(廣州)시 노교소 수감자들을 올해 말까지 모두 석방하겠다고 밝혔다.

 공산당과 중국 매체들은 지난달 15일 시중쉰 탄생 100주년을 전후해 그를 집중 조명했다. 이를 두고 ‘시 주석이 개혁론자였던 부친을 내세워 3중전회 때 개혁에 힘을 실으려는 포석’이란 분석들이 나왔다. 결국 쉽지 않을 것이란 전망을 딛고 시 주석은 노교소 폐지를 관철시켰다. 그는 이 문건에 대한 별도의 ‘설명’에서 “사회주의를 견지하지 않고, 개혁·개방하지 않으며, 경제를 발전시키지 않고, 인민생활을 개선하지 않는다면 오직 죽는 길밖에 없다”는 덩샤오핑(鄧小平)의 말을 인용, 개혁의 당위성을 역설했다.

노교소 폐지뿐만 아니라 사형 적용 축소와 고문에 의한 자백 무효화 등 그간 인권 유린 사례로 비판받아온 사법 개혁도 함께 결정됐다. 최근 유엔 인권이사국에 선임된 중국이 본격적으로 인권 개선에 나서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한편 중국 공산당은 같은 문건에서 “계획생육(한 자녀 정책)을 기본 정책으로 유지하되 부부 중 한쪽이라도 독자·독녀이면 두 아이를 낳을 수 있도록 한다”고 명시했다. 중국은 70년대 말부터 소수민족을 제외한 한족(漢族)을 대상으로 강력한 한 자녀 정책을 실시해 왔다. 이에 따라 현재 가임 연령대의 중국 부부들이 거의 독자·독녀들이어서 사실상 한 자녀 정책을 폐기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중국 당국은 ‘한 자녀 정책이 무분별한 인구 증가를 막아 인민 생활 수준을 향상시켰다’고 자평하고 있으나 최근 젊은 근로인구가 줄고 고령화 추세가 급속해져 개선책이 요구돼 왔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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