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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갑 엄마, 효자 아들의 300일 배낭여행기 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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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300일 동안 세계 배낭여행을 하고 돌아와 책을 펴낸 한동익(오른쪽)·태원준 모자(母子). 한씨는 “여행하는 내내 좋은 풍경을 볼 때마다 돌아가신 엄마와 단풍 놀이 한 번 못 가본 게 정말 후회가 됐다. 아들에게 더욱 고마워졌다”고 말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이 책, 엄마께 보여드리기가 무섭다. 가뜩이나 ‘꽃보다 할배’ 때문에 어르신들, 배낭여행에 꽂혔는데 이 책까지 보면 당장 비행기표를 끊자고 할지도 모르겠다. 60세 엄마와 30세 아들이 무려 300일(지난해 2월~12월) 동안 배낭을 메고 고난의 행군을 했다. 중국부터 아시아 찍고 중동을 거쳐 유럽까지 총 50개국을 돌았다.

아시아-유럽편 나뉜 1·2부 7만 권 팔려

 여행서가 전반적인 침체기를 겪고 있는 요즘, 가족 에세이와 여행을 결합한 이 책만큼은 호응이 뜨겁다. 7월 출간된 아시아편 『엄마, 일단 가고 봅시다!』(북로그컴퍼니)는 5만 부, 지난달 말 나온 유럽편 『엄마, 결국은 해피엔딩이야!』는 2만 부가 팔렸다. 이제는 베스트셀러 저자가 된 용감한 엄마 한동익(61)씨와 사려 깊은 아들 태원준(31)씨를 14일 만났다.

 -왜 이렇게 책이 잘 팔리나.

 ▶아들= 어머니 때문이다. 누구에게나 엄마는 눈시울을 촉촉하게 만드는 존재이지 않나. 그래서 많이 공감하는 것 같다. 어머니 또래들도 ‘이 아줌마가 어떻게 할까’ 기대하면서 보더라.

 ▶엄마= 희한한 조합이라 그렇지 않을까. 나가 보니 모자(母子)가 여행 다니는 경우가 없더라. (웃음)

 한씨는 30년 동안 작은 식당을 운영하면서 남매를 키웠다. 여행은 꿈도 꾸지 못했다. 5년 전 남편이 세상을 뜨고, 1년 전엔 모친이 돌아가시면서 갑자기 상실감이 몰려왔다. 그런 엄마에게 자식들은 세계여행 티켓을 내밀었다. 환갑 선물이었다. 마침 아들은 배낭여행 경험이 많았고 엄마에게 그 재미를 알려주고 싶었다. 영화 스태프를 하면서 2년 간 모은 돈을 여행에 쏟아 붓기로 했다.

 다소 무모하게 시작된 이 여행의 목표는 ‘내일까지 버티는 것’이었다. 숙소도 가장 저렴한 곳을 이용했고, 밥도 샌드위치로 때운 경우가 많았다. 총 경비는 4000만원 정도.

 ▶아들=처음엔 어머니를 모시면서 혹시라도 잃어버릴까 봐 엄청 긴장했다. 그런데 여행에 탄력이 붙으니 엄마가 저를 챙겨주는 상황으로 반전이 됐다.

 ▶엄마=한두 달 버틸 수 있을까 반신반의했다. 그런데 100일쯤 지나니 정말 재밌더라. 마지막 여행지인 영국에서 남미로 넘어갔으면 진짜 좋겠다 싶었다.

 ▶아들=제가 힘들어서 못하겠더라. ‘돈이 떨어졌다’고 설득해야 했다. (웃음)

경비 4000만원 … 엄마 생일선물로 떠나

싱가포르 주롱새공원에서 웃고 있는 엄마와 아들.

 엄마가 특히 매혹당한 것은 카우치서핑(Couch Surfing)이었다. 현지인의 집에서 무료로 숙식을 하는 여행자들의 비영리 커뮤니티다. 모자는 오로지 카우치서핑만으로 유럽을 돌았다. 현지 친구들이 침대를 내주고 문화를 전수하면 엄마는 맛있는 비빔밥으로 보답했다. 엄마가 처음 경험한 국경을 가로지르는 우정이었다.

 ▶엄마=한국에선 내 이름을 물어보는 사람이 없는데, 그들은 나이에 관계없이 이름부터 물어봤다. 정말 친절한데 그게 참 자연스럽더라. 귀빈 대접을 해주는 친구들도 있었다. 각 나라마다 아들·딸이 생긴 셈이다. 스웨덴 친구들은 우리를 만나겠다며 한국 여행을 오기도 했다.

"아직 남미는 가보지 못했는데 … ”

여행이 언제나 즐거웠던 것은 아니다. 절체절명 위기의 순간도 있었다. 이슬람교의 금식기간인 라마단 기간에 중동지역을 한 달 간 여행하면서 무척 고생했다. 비좁은 골목에 들어가서 몰래 음식을 먹다가 현지인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기도 했다. 그래도 300일을 잘 버틸 수 있었던 것은 블로그 때문이었다.

 아들은 여행 이야기를 매일 블로그에 올렸는데, 입소문이 나면서 그들을 응원하는 팬들이 생겼다. 포기할까 싶다가도 “힘내라”는 메시지를 보며 다시 신발끈을 고쳐 맸다. 그리고 이 블로그가 책의 씨앗이 됐다.

 “예전엔 애들 생각, 먹고 살 생각만 했었어요. 그런데 여행을 갔다 와선 제 생각도 조금 하게 됐어요. 아들이 없었다면 못 갔겠죠. 이렇게 철든지 몰랐어요.”

 “엄마, 철 들었으면 엄마랑 이런 여행 못하지.”

글=김효은 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밥은 샌드위치로, 잠은 일반 가정서 … 돌다보니 50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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