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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성남 '키드카' 장수웅 사장님, 월 매출 2000만원 비결 뭡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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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지난 13일 오후, 경기도 성남시 야탑동 주택가의 한 건물 지하. 값비싼 수입 유모차 수십 대가 늘어선 사무실에 굵직한 목소리가 쩌렁쩌렁하게 울려 퍼졌다.

 “유모차 브랜드가 뭐예요? 아, 그거 바퀴 베어링이 깨졌나 보네. 일단 사진 찍어서 카톡으로 보내주시고요. 갖고 오시면 바로 고쳐 드립니다. 택배로 보내셔도 되고요.”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야탑동의 키드카 사무실은 99㎡(약 30평) 남짓한 공간에 고급 수입유모차와 부품들이 가득했다. 25년 경력의 유모차 전문가 장수웅 사장은 “번듯한 곳으로 가게를 옮기려고 했지만 이곳을 기억하는 손님이 많아 옮기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형수 기자]

 고장 난 수입 유모차를 전문으로 수리해주는 ‘키드카’ 장수웅(52) 사장의 휴대전화는 쉴 틈이 없다. 하루에도 서너 번씩 충전을 해야 할 정도다. 그는 “봄·가을 성수기 때는 낮엔 전화만 받고 고치는 일은 어둑해진 다음에 시작한다”고 했다. 지난 11년간 거뭇거뭇한 그의 손끝에서 수명을 연장한 수입 유모차만 10만 대가 넘는다.

 수입 유모차 전성시대다. 200만원대 미국 유모차가 ‘고소영 유모차’로 알려져 불티나게 팔리고, ‘유모차계의 벤츠’라는 노르웨이 유모차도 거리 곳곳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런 수입 유모차를 구입한 부모들에게 장 사장의 키드카는 ‘유모차 병원’ 같은 곳이다. 고장 났다고 해서 쉽게 버릴 수도 없는, 값비싼 수입 유모차를 장 사장은 저렴하게, 재빠르게 고쳐준다. 이날 가게를 찾은 김모(43·서울 상도동)씨도 “선물로 받은 유모차가 고장 나서 알아보니 해외 직접구매로 산 물건이더라”며 “정품이 아니라서 정식 애프터서비스(AS)는 받을 수 없어 난감했는데, 이곳을 알게 돼 한걸음에 왔다”고 말했다.

 장 사장이 처음부터 유모차 수리를 한 것은 아니다. 영남대 전기공학과 80학번인 그는 대학 졸업 후 유모차 제조사에 취직했다. 하루라도 빨리 돈을 벌자는 생각에 전공과는 전혀 무관한 직장에 들어가 유모차를 만드는 일을 배웠다. 1980년대 후반이던 당시 젊은 부부들 사이에서 유모차가 유행처럼 번지던 시절이었다. 유모차를 비롯한 유아동용품 시장이 나날이 커졌다. 장 사장은 유아동품 제조사인 ‘베비라’로 직장을 옮겼다. 여기서도 유모차 만드는 일을 하다가 입사 7년째에 베비라 하청업체 사장님이 됐다. 베비라가 생산하는 모든 제품의 AS를 도맡았다. 유모차도 고치고, 아기 옷 지퍼도 고쳤다. 장 사장은 “외환위기 때도 크게 흔들리지 않고 회사를 키웠는데, 2000년대 넘어가면서부터 수입품에 국산 아기용품들이 맥을 못 췄다”고 말했다.

한 수입 브랜드 유모차의 주요 부품들. 이 부품들을 전부 교체할 경우 수리비가 42만원, 웬만한 유모차 한 대 값이다. 장 사장은 손님들에게 꼭 필요한 부분만 고쳐 수리비를 줄이도록 권한다. [김형수 기자]

 장 사장은 2002년 베비라 하청 일을 그만두고, 수입유모차 판매상으로 나섰다. 하지만 경쟁이 심했다. 그러다 생각을 바꿨다. “수입 유모차를 사는 사람은 많은데, AS시스템은 제대로 안 갖춰진 거예요. 정식 수입품이라도 제조번호를 등록해 놓지 않거나 보증기간이 끝나면 무상AS를 받기가 힘들고, 수입업체도 자주 바뀌니 사후 관리도 안 되고…. 여기에 길이 있구나 싶었죠.” 선구안이었다. 키드카를 창업한 지 11년 만에 월평균 2000만원을 버는 강소상인이 됐다.

 특히 7~8년 전부터 수백만원짜리 수입 유모차 시장이 폭발적으로 커지면서 손님이 급증했다. 신생아 수는 줄어도 고가의 프리미엄 유모차 외에 휴대용 세컨드 유모차까지 구비하는 집이 많아지면서 수요는 더 늘었다. 봄~가을 유모차 고장이 잦은 성수기엔 한 달 매출이 3000만원까지 오른다. 경쟁업체들도 하나 둘 생겨났다. 장 사장은 선점한 시장에 안주하지 않았다.

 전문적이고 빠른 상담으로 특화했다. 유모차 전문가인 장 사장 자신이 손님들의 문의 전화를 직접 받는다. 주말에도, 밤 12시에도 걸려온 전화는 모두 받는다. 장 사장은 “얼마나 급했으면 밤 12시에 전화를 했겠어요. 아이 엄마가 퇴근하고 돌아와 인터넷으로 우리 가게를 찾고 전화했다는데, 당연히 상담해 드려야죠”라고 말했다. 손님이 느끼는 감동은 두 배가 된다. 수입 브랜드 유모차는 대부분 고쳐봤기 때문에 얘기만 듣고도 대략 어디가 문제인지 파악해 시원시원한 상담이 가능하다. 폭주하는 전화 때문에 잠시 여직원을 둔 적도 있다. 하지만 서비스 질은 전문성 있는 장 사장의 직통 전화와는 비교가 안 됐다. 다시 장 사장이 전화기를 들었다.

 단순히 수리에 관한 상담만 하는 게 아니다. 유모차 브랜드별 가격과 장단점 등을 꿰고 있는 장 사장에게 유모차 구입 노하우를 묻는 젊은 엄마들이 많다. 그는 유모차 제조부터 수리까지 25년간 쌓은 전문 지식을 아낌없이 퍼준다. 최근엔 명품을 위조한 ‘짝퉁 유모차’를 식별해내는 방법도 알려준다.

 ‘빠르고 정직한 수리’는 장 사장의 사업 핵심 원칙이다. 손님이 가게로 가져온 유모차는 가능한 한 바로 갖고 돌아갈 수 있게 고쳐주고, 택배로 배달된 물건도 다음 날에는 반송하는 편이다. 그는 “유모차가 없으면 발 없는 것처럼 불편해하는 부모들에게 빨리 돌려줘야 제 마음도 편하거든요”라고 말했다.

 또한 꼭 필요한 부분만 고치도록 설명해서 손님의 수리비 부담을 최소화한다. 수입 유모차는 수입차처럼 부품이 비싸기 때문에 손님 입장에선 ‘덤터기 썼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어서다. 장 사장이 수리비 내역을 자세히 설명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는 “내가 전자제품 AS센터에 가보니 수리비가 왜 그만큼 나오는지 아무도 설명해주지 않아 기분이 나빴던 적이 있다”며 “손님 눈높이에서 수리비를 생각하니 손님들이 더 믿어준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면 손해를 볼 때도 있다. 한 번은 150만원이 넘는 유모차를 수리했는데, 유모차 프레임에 작은 흠집이 난 걸 발견하고는 항의한 손님이 있었다. 장 사장은 “내가 고치다가 긁은 것인지 정확하지 않았지만, 두말 않고 프레임을 다 갈아줬다”며 “내가 좀 손해를 보더라도 손님이 불만을 갖고 나가지 않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장 사장은 안정적인 수입원을 확보하기 위해 고객 그룹을 다각화했다. 개인뿐 아니라 기업도 그의 고객이다. 대한항공·아시아나항공·캐세이패시픽 등 주요 항공사들이 장 사장을 찾는다. 유모차를 항공기 수하물로 실었다가 부서져서 항공사가 보상해야 할 일이 생기면 장 사장이 고친다. 구매대행 업체나 오픈마켓 유모차 판매상들도 장 사장과 상생관계다. 계약을 맺고 장 사장에게 AS 대행을 맡기는 것이다. 장 사장은 “처음엔 판매상들이 ‘얼마 안 있어 문 닫는 거 아니냐’며 주저했는데, 내가 워낙 한 우물만 오래 판 걸 알고 난 다음부터는 믿고 맡긴다”고 말했다. 이들 해외 판매상은 현지 제조사를 통해 부품 조달을 도와주기도 한다.

 장 사장이 직접 부품을 구할 때도 많다. 얼마 전엔 유모차의 고장 난 부위를 찍은 사진과 함께 짧은 영어로나마 필요한 부품을 설명해 스웨덴 유모차 제조사에 e메일을 보내자 얼마 후 부품이 배달돼 왔다. 그는 “‘못 고치는 유모차는 없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부품을 못 구하면 직접 만들어서라도 고쳐낸다”고 힘주어 말했다.

 장 사장은 “처음엔 넥타이 매고 폼 나게 대기업 다니는 친구들 앞에서 초라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며 “이젠 내가 사정이 제일 나은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유모차의 역사를 지켜본 사람으로서 초창기 국산 유모차 모델부터 요즘 유모차들까지 한 대씩 수집해 유모차 전시회를 하고 싶은 꿈이 있다”고 덧붙였다.

글=박수련 기자
사진=김형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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