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늘어나는 직업병 그 실태와 대책|「유해물질허용 농도 및 측정요령」을 보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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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새로운 기술도입과 함께 각종 화학원료사용 증가와 산업시설의 확장 등으로 직업병이 날로 늘어나는 등 근로자들의 건강관리가 점차 크게 문제시되고 있다. 노동청은 지난 7일 근로자들의 건강관리를 위해 각 사업장에서 발생하고 있는 「개스」·분진 등 유해물질의 허용농도와 측정요령을 예규로 제정, 각 시·도에 시달했다. 이번에 예규로 제정된 「유해물질 허용농도 및 측정요령」은 61년도에 이미 만들어진 현행 「근로 보건관리규칙」을 보완하기 위한 것이다.
예규가 나오기까지 근로보건관리 규칙만으로는 유해물질의 허용농도와 그 측정방법이 없어 법령의 효율적인 집행이 불가능했었다.
이처럼 법령의 미비를 절감한 노동청은 70년7월15일 보완 예규를 시안, 사계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산업안전보건위원회의 자문을 거쳐 같은 해 10월19일 채택했으나 그 동안 묵혀뒀다가 뒤늦게 발효했다.
관계당국자는 법령체계상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어 지금까지 늦어졌다고 변명하고 있지만 아뭏든 근로자들을 위해선 퍽 다행한 일이다.
구미선진국에서는 40년도에 근로자보건관리를 위한 유해물질허용농도가 규정됐고 일본에서도 48년도에 이러한 기준을 이미 마련했다.
노동청이 이번에 시달한 예규를 보면 유해물질은 「개스」·분진·소음·온도·증기 등 5종으로 하고 「개스」는 정종, 분진 8종, 온도는 고온과 한랭으로 세분하고있다.
직업병은 특정한 직업에 종사함으로써 발생하는 질병을 가리킨다.
직업병은 그 직접적인 원인에 따라 ⓛ작업량이 너무 많거나 작업방법이 부적당한 경우 ②작업환경이 나쁜 경우 ③유해물질의 취급이나 병원체를 취급하여 발생하는 경우 등 3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직업병은 산업의 형태나 기술의 변천에 따라 그 양상도 달라진다.
지난 8일 전북 김제에 있는 「호남잠사」 여자종업원 1백63명 가운데 1백18명이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는 작업을 하다 병원성 곰팡이인 「모릴리어스」 피붓병에 집단적으로 걸린 것은 그 한 예이다.
또 지난 해 11월22일에는 대한산업보건협회가 밝힌 경인공업지대의 각종 직업병으로 커다란 충격을 주었다.
식품·화학·금속·수송·용기·기계·전기·섬유·토석·유리부문 등 12개 제조업 중 80개 사업장(10이상)을 대상으로 표본조사를 6개월 동안 실시한 결과 대부분의 업소가 유해물질 허용농도를 넘어 근로자들이 중독·난청·피부염 등 각종질병을 유발하고 있었다. (유해물질 중독 52∼88%, 난청 38∼52%, 눈병·피부염 45∼1백%).
주무관청인 노동청은 71년도의 각종 직업병발생현황을 아직까지 파악치 못하고 있어 지난해에 비해 얼마만큼이나 직업병이 늘었는지 정확한 증가추세를 알 수가 없다.
70년도에는 전국 6천2백72개 사업장의 근로자를 대상으로 건강진단을 실시한 결과 직업병 유발환자가 6백91명으로 집계됐다.
유형별로 보면 소음에 의한 귓병환자가 2백55명(36.9%)발생으로 가장 많았고 부상에 의한 질환 1백41명(20.4%) 피부염 86명(12.4%) 폐결핵 32명(19.1%) 진폐 18명(2.6%) 등으로 나타났다.
이 통계 역시 신빙성이 극히 희박한 것 같다.
경인공업지대에서 만도 상당수의 직업병 유발인자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여하간 근로자가 건강하고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작업환경을 조성하는 것은 근로자의 개인적인 안전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생산능력과 직결되는 중요한 문제다.
우리 나라 근로기준법과 시행령 및 근로안전규칙 등은 근로자의 건강 유지와 산재예방을 위한 각종건강관리, 산재예방을 위한 시설 등을 사업주의 의무로 부과하고 있으나 제대로 실시되고 있는 곳은 드문 형편이다.
이 때문에 생기는 근로자의 직업병과 산재사고는 해마다 늘어나게 마련이다.
노동청이 집계한 71년도 각종 사업장의 재해발생자수는 모두 2만6천7백16명에 4백11명이 사망했고 13억3천8백만 원의 피해를 냈다.
이 가운데 대부분이 사업주가 작업장의 시설개선에 조금만 관심을 보였어도 예방할 수 있는 것으로 풀이되고 있어 근로감독의 철저와 시설개선의 시급함을 말해주고 있다.
특히 화학약품을 사용하는 사업장이 점차로 늘고 있는데도 사업주들이 안전을 위한 시설을 제대로 갖추지 않고 있어 근로자 다수가 「벤젠」 「트리클로로·에틸렌」 등 치료가 거의 불가능한 조혈기능장애·호흡기장애 등에 걸려 신음하고 있다.
노동청은 올해 노동행정의 산업안전보건사업으로 근로자 50명 이상 1백명 이하의 제조업체를 대상으로 오는 4월l일부터 3개월 간 안전보건관계법령이나 기타 안전보건기준의 위반여부를 철저히 가려내어 시정키로 했다.
또한 유해위험사업장 2백29개소와 재해다발사업장 85개소 및 밀집형태의 27개 시장·상가에 대해서는 매월 1회 이상 현장점검과 개선지도 감독을 하고 유해위험의 정도에 따라 적색·황색표지를 붙여 재해요인을 없애겠다고 밝혔다.
노동청은 이밖에 85만 명의 근로자에게 일반검진을 실시하고 유해작업 부서에서 종사하는 근로자들에겐 특수검진(직업성 질환을 발견하는 검사)을 통해 건강보호에 힘쓰기로 했다.
그러나 문젯점은 우리 나라 여건에 비추어 사업주들이 노동청이 지시한대로 사업장의 근로환경을 얼마만큼이나 개수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다.
또한 전국(16인 이상 사업장 1만2천4백24개소 1백1만1천3백48명)에 단57명밖에 안 되는 근로감독관만으로는 도저히 감독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다는 것이다.
노동청은 근로감독관 1인당 2백71개 사업장(근로자 1만9천명)을 담당하고 있는 감독관 수를 1백70명으로 대폭 늘려 1인당 1백개 사업장을 담당하도록 증원계획을 세우고 있는 실정이다.
뿐만 아니라 근로감독관들은 각종 유해물질과 피부염·신경성질환·진폐·소화기질환 등 1백여 종이 넘는 각종 직업병에 대한 전문지식도 너무나 빈약하다. <안기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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