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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함성 수놓아 민족의 얼 되새겨|해마다 병풍·액자 만들기 7년…김예원 여사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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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3·1정신, 3·1의 감격은 자꾸 잊혀져 가고 있습니다. 길이 이어받도록 깨우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김예원 여사(58·충북 중원군 엄정면 301)는 잊혀져가는 그 날의 뜻을 길이 후세에 전하기 위해 독립선언문 2천7백50자를 한자 한자 수놓아 열두폭 병풍으로 만들어 뜻있는 곳에 무료로 기증하는 일에 몰두하고 있다.
이 일에 손을 댄지 7년째 되는 김 여사는 그동안 독립선언서 전문으로 된 병풍 3개(가로 5.6m, 세로 1.7m)와 독립만세를 수놓은 액자(가로 4m, 세로 1.5m) 3개 등 한해에 1개씩 만들어 각개에 기증했으며 곧 또 한개의 병풍을 완성할 예정이다.
김 여사가 누구도 모르게 이 일을 시작한 것은 날이 갈수록 3·1정신이 쇠퇴해가고 있어 이러다가는 얼마가지 않아 조상들의 참된 얼이 끊어질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라는 것인데 1년에 병풍이나 액자를 1개 만들려면 퍽 부지런하게 일손을 놀려야 한다는 것.
처음 수놓기를 마음먹은 것은 65년 당시 한일국교 정상화 작업이 매듭 지어져 말이 많을 때였다. 본을 뜨기 위해서 서예대가인 김기승씨를 찾아가 이 뜻을 말했더니 선뜻 독립선언서 전문을 써주었다는 것이다.
「독립만세」란 이름의 액자의 본은 서울대 미대교수 5명이 이갑성씨의 감수아래 그린 것을 썼다. 이때부터 병풍·액자를 1년 교대로 1개씩 수놓았는데 첫 작품은 선언문 기초자인 최남선씨의 장모(당시 애국부인회 회장)에게 기증했고 이밖의 5점의 작품은 재일 거류민단, 서울남산어린이회관 역사실 등 관계기관에 기증했다.
김 여사는 평북 정주 태생으로 해방 전에 북간도에서 근화여학교를 나왔다. 해방 후 한때는 서울에서 회사를 경영하기도 했으나 4·19후부터 사회사업에 손대 5년 전부터 목계에서 가내공업「센터」를 만들어 마을 부녀자 1백37명에게 수예 등 기술을 가르치고 있다. 작년엔 이 부녀자들이 만든 작품으로 위주와 충주에서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북간도에 있을 때는 독립 운동하면 아버지의 심부름으로 권총과 탄약 등을 치마허리에 틀러 광복군에게 전하기도 했다는 김 여사는 그때 우리 민족이 망했던 쓰라림, 쓰라림에서 벗어나려고 일어섰던 감격적인 3·1운동의 뜻이 세월과 더불어 희미해져 가는 것이 가슴 아프다고 말하고 있다. <충주=최근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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