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더 북한 사설

'사초 실종' 과거사 정국에서 벗어날 때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0면

2007년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폐기의혹 수사 결과가 어제 발표됐다. 114일에 걸친 이른바 사초 실종 수사는 ‘누가 어떻게’라는 부분에 대해선 비교적 소상하게 밝혀 냈으나 ‘왜’라는 부분에 대해선 적극적으로 파헤치지 못했다.

 검찰은 회의록 폐기의 주체가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명시했다. 당시 노 대통령이 백종천 외교안보실장·조명균 안보정책비서관에게 “(청와대의) e지원 시스템에 있는 회의록 파일은 없애도록 하라. 회의록을 청와대에 남겨두지 말라”는 취지의 지시를 했다는 것이다. 노 대통령은 또 조 비서관이 작성한 회의록 초본을 수정하라고 지시했다. 결국 베일에 싸였던 회의록 폐기 및 삭제·수정의 주체가 노 전 대통령으로 특정된 게 검찰 수사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다. 앞으로 재판 과정에서 노 대통령이 도대체 왜 회의록 폐기를 지시했는지가 명확히 나와야 한다. 정치적 부담 때문인지 수사의 미비 때문인지 검찰은 노 대통령이 회의록을 폐기한 동기에 대해 언급하지 않았다.

 문재인 의원이 회의록 폐기의 법적 책임에서 벗어나게 된 것도 눈길을 끈다. 검찰은 “문 의원이 회의록 삭제에 관여했다는 증거가 없다”고 발표했다.

 당시 대통령 비서실장이자 정상회담 준비위원장으로 스스로 “내 책임하에 기록물을 이관했다”고 했던 문 의원이 과연 폐기 과정에 관여하지 않았을까. 하지만 검찰은 이 문제를 더 이상 파고들 생각이 없는 것 같다. 검찰 수사가 이 정도로 마감됐다고 해서 문 의원에 대한 정치적·도의적 책임이 면제되는 건 아닐 것이다. 그는 현재는 대화록 실종사건을 일으킨 정치인으로서, 2007년 당시엔 대화록의 폐기·삭제·수정 사실을 까맣게 몰랐던 청와대 비서실장으로서 자숙해야 한다.

 또 하나 주목할 사실은 검찰이 ‘초본이나 수정본에서 회담의 본질적인 내용에 큰 차이가 없음’을 적시한 것이다. 그동안 새누리당 쪽에선 노 대통령이 초본에서 NLL 포기로 볼 만한 내용이 많은 걸 보고 이를 수정하도록 지시했을 것이란 의심을 해왔다.

 검찰의 수사내용엔 말 없는 노 전 대통령이 답해야 할 것들이 많다. 그러나 살아있는 정치권한테 치명적인 타격이 되는 건 없다. 여야가 공연히 자신의 결백과 상대방 공격에 사로잡혀 요란을 떨 이유가 없는 것이다. 애초부터 핵심 관계자가 사라진 과거사 수사 아니었나. 정치권은 이제 재판으로 넘겨진 과거사 사건을 차분히 지켜보고 더 이상 정쟁화하는 행위를 중단하길 바란다.

 사초 실종 수사는 대통령 기록물 관리의 엄중한 교훈도 주었다. 노 전 대통령이 주도해 대통령기록물 관리법과 관련 제도를 구축한 건 평가할 만하나 실제 기록물 처리 과정에서 이를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법과 제도의 완비도 중요하지만 통치자와 청와대 참모들의 치열한 기록보존 의식이 절실하다고 할 것이다.

사초 실종 사건이 벌어질 때 15년, 30년간 볼 수 없는 대통령 지정기록물이 목록조차 없어 혼란이 가중됐는데 지정기록물의 목록만큼은 일목요연하게 정리하는 등 기술적 보완도 있어야 할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