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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숙한 기교 절묘한 음색|내가 본「유리·부코프」의 연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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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중앙일보와 동양방송의 특별주선으로 프랑스의 명 피아니스트「유리·부코프」의 연주를 오는 3월7일 저녁7시 서울시민회관에서 다시 듣게 되니 감회가 깊다.
필자는 10년 전 그의 연주회를「파리」의 「살·플레이에르」에서 들었던 일이 있다. 기교 면으로 굉장히 발랄하고 청신한 젊음이 넘치는 의욕적인 연주로서 항상 초만원을 이루었으며 앙코르를 세 번씩이나 받을 만큼 인기가 대단하였다.
아무든 그 당시의「매스컴」은 그의 음악성은 완숙한 경지에 이르렀고 버라이어티가 많으며 감상적이고 고운 음색으로 충만 된 연주였다고 평했다.
한편으로는 그를 독특한 영감과 노련한 테크닉과 약동하는 지칠 줄 모르는 정열을 가진 천재적인 대 피아니스트라고 최대의 찬사를 아끼지 앉았다. 이렇듯 오늘날 세계적인 대 피아니스트로 성장한 그는 49년 전「불가리아」에서 태어났으며 6세 때에 음악가인 어머니로부터 음악을 배우기 시작하였고 10세 때에는 불가리아의 음악석학인「앙드레이·스토야노프」에게 사사, 그후 1년 후에는 「소피아·콩세르바퇴르」에서 첫 연주회를 성공리에 열어 장차 대 피아니스트로서의 그의 재질을 인정받게 되었다.
그후 15세 때에 왕과 왕후 앞에서「사카포포브」지휘로 「그리그」의 「피아노」협주곡을 「불가리아·로열·필하모닉·오케스트라」와 협연하여 그의 천재적인 재능을 높이 평가받게 되었다.
1945년에는「불가리아」국립음악원에 입학, 그곳 국립「콘테스트」에서 1등 상을 받았고 이어서 1946년에는 프랑스에 유학, 「파리·콩세르바퇴르」(국립음악원)의「이브·나트」반에 입학하여 역시 1등으로 입상하는 등 그의 재능은 많은 명 피아니스트에게 인정되어 사사를 받게 되었고, 그후 세계굴지의 유명한 국제적 「콩쿠르」에서 많은 상을 획득하였다.
즉 1947년에「제네바·콩쿠르」, 1949년에「마그리트·롱·콩쿠르」, 또 1952년에는「퀸·엘리자베드」와 「디머·콩쿠르」 등에 당당히 1등 상을 받음으로써 그의 명성은 전세계에 날렸으며 대 연주가로서 기틀을 굳게 다지게 되었다.
프랑스의 시민으로 귀화한 그는 그로부터 세계연주여행에 올랐으며 독일·소련·중국·미국·폴란드·「불가리아」·유고·「캐나다」·「이집트」·「알제리」·근동·중미 및 서구 각국 등을 순방하면서 연수하여 절찬을 받은바 있으며 한편 여러 유명한 교향악단과도 협연하는 등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그밖에 많은 녹음도 하였는데 그 중에서 대표적인 디스크는「프로코피에프」의「소나타」전곡, 「쇼펭」의『포로네이즈』를 비롯하여 최근에「콜롬비아·레코드」에서 나온「무소르그스키」의『전람회의 그림』, 「리스트」의 피아노 협주곡 등을 들 수 있겠다.
「유리·부코프」의 내한연주는 우리의 신춘음악계와 청중들에게 새 활력소를 넣어 줄 것이 틀림없다.
서계숙<피아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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