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일기] 하루 만에 바뀐 법인세 인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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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표 경제부총리가 밝힌 법인세 인하 방침이 하루 만에 제동이 걸린 모양이 됐다. 金부총리는 지난 4일 "경쟁국보다 낮거나 같은 수준으로 법인세를 인하해야 한다"고 밝혔다.

그는 같은 날 노무현 대통령이 주재한 국무회의에서도 이 같은 입장을 피력했다. 싱가포르의 사례를 들며 법인세 인하 필요성을 언급한 최종찬 건교부 장관의 견해에 "외국인 유치에 긍정적이고 검토할 만한 정책"이라고 말한 부분이 그렇다. 당시 盧대통령은 이에 대해 특별한 언급을 하지 않았다고 송경희 대변인이 전했다.

그러나 다음날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盧대통령은 "법인세 인하는 전체적인 재정구조와 경제에 미치는 영향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세형평이 후퇴하는 일은 절대로 없다는 점을 확실히 해둬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사실 새 경제팀의 법인세 인하 기류는 사전에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졌다. 또 盧대통령이 金부총리의 입장이 자신의 뜻과 다르다고 생각했으면 국무회의 등에서 조정할 기회가 충분히 있었다. 그럼에도 새 정부는 이를 놓쳤다. 토론 위주로 국무회의를 진행하겠다는 방침이 공허해진다.

특히 盧대통령의 언급에 앞서 나온 시민.사회단체의 공격은 짚어볼 대목이다.

참여연대는 법인세 인하 반대 성명에서 "盧대통령이 첫 국무회의에서부터 자신의 공약(公約)을 '공약(空約)'으로 만들어 버렸다"고 비판했다.

"결과적으로 법인세를 많이 내는 일부 대기업은 혜택을 받겠지만 중소기업의 세부담은 오히려 늘어날 수 있다"는 내용이 盧대통령의 마음에 걸렸을 수 있다. 민주노총도 비난 성명을 냈고 일부 네티즌은 시민단체 홈페이지 등에 항의 글을 올렸다.

만일 盧대통령의 법인세 관련 언급이 이 같은 성명들 때문이라면 소신있는 정책결정은 어려워진다.

김성탁 정치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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