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공회담과 한국의 자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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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21일 「닉슨」대통령은 중공수도 북경에 도착했다. 그는 앞으로 1주일간 중공에 머무르면서 중공수뇌들과 일련의 회담을 하기로 예정되어 있다. 20년을 두고 적대적 대립을 지속해 오던 미·중공이 정상회담을 열어 가지고 접근, 화해를 적극 시도하게 되었다는 것은 분명히 획시대적인 의의를 갖는 것이다. 때문에 「닉슨」대통령의 중공방문은 족히 역사적인 행동이란 평을 내릴만한 것이다.
미·중공 정상회담은 비단 양국관계의 개선 뿐만 아니라 양국간에 계쟁되어 있는 국제문제-예컨대 대만문제나 월남전쟁문제, 한반도 문제, 일본문제, 나아가서는 세계정세 전반에 관해서 의견교환을 할 것으로 예측되기 때문에 세계적인 주목거리가 되어 있다. 특히 한국에 살고 있는 우리들은 오늘날 한반도에 있어서의 남·북 대립이 미·중공 대립의 일면으로 간주될 수 있는 것인데다가, 미·중공간 흥정은 남·북 관계나 한국통일문제의 운명을 좌우할 가능성이 큰 것이므로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미·중공 정상회담의 추이를 주목치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우리가 미·중공 회담에 대해서 지대한 관심을 갖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지만 우리는 미·중공 접근이 곧 양국간의 화해·친선을 의미하거나 혹은 당장에 남·북한 대립의 긴장을 풀 수 있는 것으로 착각해서는 안된다. 대화와 흥정은 전쟁 중에 있는 교전국 사이에도 행해질 때가 많다. 하물며 미국과 중공처럼 20년전에 한반도에서 한번 격심한 전쟁을 치르고 그 후 출혈없는 소강상태를 지속해온 나라들이 국제정세 변화에 순응해 대화를 하게 되었다 해서 조금도 놀라운 일은 아닐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이번 정상회담은 회담 개최 그 자체에 큰 의미가 있는 것이지 그 구체적인 성과에 관해서는 낙관적인 기대를 걸만한 것이 못된다. 왜냐하면 20여년간 적대적 대립을 지속해 온 양국간의 좋지 못한 감정을 푸는데도, 또 두 나라가 우호·친선하기 위해서 반드시 풀지 않으면 안될 제반 난제를 해결하는데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 것이기 때문이다.
2차 대전 후 치열한 냉전대립을 지속해오던 미·소가 평화공존의 필요성을 서로들 느끼게 된 것은 1954년 정상회담 때부터였음에도 불구하고 양국이 대립감정을 누그러뜨리고 실제로 평화 공존하게 된 것은 1962년말 「쿠바」사태 이후였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역사가 되풀이되는 것은 결코 아니고 또 미·소간 접근·화해의 과정과 미·중공간 접근·화해의 과정이 분명히 다르다는 것을 솔직이 시인할 셈치고라도 미·중공이 국교를 정상화하는데도, 또 평화 공존하는데도 많은 시일의 경과가 필요하리라고 보는 것은 상식적인 견해에 속한다.
「닉슨」의 중공방문은 전세계에 보도되기 때문에 「죽의 장막」안의 광경이 전파나 기타「매스·미디어」를 통해서 우리나라에도 전달되기로 되어 있다. 우리 국민이 큰 호기심을 가지고 이 「매스·커뮤니케이션」에 접해 나간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고 또 조금도 못마땅한 일은 아니다.
그러나 중공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정보의 일시 과잉으로 우리 국민이 중공을 평화애호국가로 판단해 중공이 북괴와 한 덩어리가 되어 가지고 대한민국에 대해서 엄중한 적대정책을 쓰고 있다는 현실을 망각하게 된다면 우리는 안보의 정신적 차원에서 큰 손해를 오게 될 것이 분명하다. 우리는 미·중공 정상회담의 진전에 대해서 큰 관심을 갖고 정보의 수집·분석·평가를 해나가야 하겠지만 우리는 한국전쟁이래 지금까지 중공과 적대관계에 놓여있다는 것을 순시도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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