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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공공기관, 파티는 끝났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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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현오석 경제부총리가 어제 20개 공공기관장과 새벽밥을 먹었다. 취임 후 처음이다. 그는 “파티는 끝났다”며 공공기관의 방만 경영을 강하게 질타했다고 한다. 20개 기관은 한국전력·LH 등 빚 많은 12곳과 무역보험공사 등 복리후생이 과도한 8곳이다. 참석한 공공기관장들은 내내 꿀 먹은 벙어리처럼 현 부총리의 질타를 듣고 있었다고 한다. 현 부총리는 “민간 기업이었다면 감원의 칼바람이 몇 차례 불고 사업 구조조정도 수 차례 있었을 것”이라며 특단의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했다. 구구절절 옳은 말씀이다.

 하지만 경고와 질책으로 부총리의 역할이 끝나는 건 아니다. 경제부총리는 공공기관 개혁의 사령탑인 동시에 방만 경영에 대해 책임을 지는 자리이기도 하다. 그런 만큼 현 부총리는 자리를 거는 각오로 개혁을 밀어붙여야 할 것이다. “박근혜정부는 공공기관을 근본적이고 제도적으로 변화시키겠다는 의지를 갖고 있다”는 그의 다짐이 이번엔 제발 말만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란다.

 공공기관 방만 경영은 도를 넘은 지 오래다. 빚 많은 공공기관 10곳이 지난해 뿌린 성과급만 6000억원이 넘는다. 14개 적자 공공기관장은 평균 연봉 2억1000만원에 9000만원의 보너스를 받아 갔다. 그뿐이랴. 고용 세습에 학자금 무제한 지원까지 경쟁적으로 혜택을 늘려 왔다. 기관장에서 말단 직원까지 회사·나라가 빚에 허리가 휘든 말든 제 뱃속만 채운 것이다.

 최근 JTBC의 실태 보도를 보면 말문이 막힐 정도다. 한전의 한 자회사는 발전소에 직원용 비상 숙소 4곳을 지었다. 1000만원이 넘는 스파 욕조에 대리석 벽면, 이동식 바까지 갖춰 말이 비상 숙소지 초호화 별장이나 다름없다. 이런 자회사를 거느린 한전의 부채는 50조원이 넘는다. 그런가 하면 농어촌공사는 파주지사를 66억원 들여 최근 재건축했다. 대형 테니스코트와 체력단련실을 갖췄지만 상근 직원은 54명뿐이다. 직원 1인당 사용 면적만 54㎡, 적정 공간인 10㎡의 다섯 배가 넘는다. 하도 넓게 쓰다 보니 건물 안에서 사람 찾기가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방만 경영의 결과는 총체적 부실이다. 2008년 290조원이던 295개 공공기관 부채는 지난해 493조원으로 2배 가까이 늘었다. 이미 나라 빚(443조원)보다 많다. 올해엔 500조원을 넘어설 전망이다. 방만 경영만 탓할 것도 아니다. 선거 때마다 전기·도로·철도·수도 요금을 묶은 포퓰리즘, 보금자리 주택과 4대 강 사업 등 대권 공약이 부실의 주범이요, 노조에 빌미를 줘 구조조정을 가로막은 고질적 낙하산 인사가 공범이다. 이런 일이 반복되니 임직원의 방만 경영과 모럴 해저드가 체질화된 것 아닌가.

 무디스는 어제 공기업 빚이 한국 경제의 뇌관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안팎에서 경고등이 켜지고 있다. 더는 개혁을 미룰 수 없다. 필요하면 사정기관도 나서야 한다. 정권도 달라져야 한다. 포퓰리즘과 무리한 공약, 낙하산 인사를 끊는 일이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