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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민 기자의 '살림의 신'] 가계부 쓰기 24년 … 20억대 자산가 된 그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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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방영된 SBS 드라마 ‘파란만장 미스김 10억 만들기’. 배우 김현주·지진희가 주인공을 맡았다. 돈 때문에 애인을 빼앗겨 10억 만들기에 도전한 여자 유은재(김현주)와 얼떨결에 동거를 시작한 남자 박무열(지진희)의 사랑 이야기를 그렸다. 전국 기준 최고시청률 23%를 기록했다. 알려진 드라마 이름 덕분에 한동안 ‘미스김 10억 만들기’와 비슷한 이름을 내건 금융상품이 많이 등장했다. 자산관리 전문가들도 앞다퉈 ‘5년 안에 10억 만들기’ ‘3년 만에 1억 만들기’ 같은 주제로 고객들에게 투자를 권유했다. 일종의 유행이었다.

드라마 제목에 쓰인 10억원은 결코 적지 않은 금액이다. 고액에 속하는 1억원을 연봉으로 받는 봉급쟁이라 해도, 한 푼 안 쓰고 꼬박 10년을 저축해야 하는 돈이다. 올 초 온라인 취업포털 사람인이 국내 1000대 기업 대졸초임을 분석한 결과 평균 3352만원으로 집계됐다. 이 돈으로 10억원을 만들려면 꼬박 30년을 모아야 한다.

최근 JTBC 살림정보 프로그램 ‘살림의 신’ 녹화 현장에서 만난 재무설계사 김영돈씨는 ”지난해 우리나라 저축률은 4%에 지나지 않는다. 1988년 가계저축률 24.7%에 비하면 엄청나게 줄어든 것”이라고 말했다. 저축률 4%는 100만원을 벌어 4만원만 저금했단 얘기다. 예금 금리가 시원찮고, 단순 저축보다 다른 투자처에 간 돈이 많다는 걸 감안해도 가계저축률 하락 속도는 가파른 편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10억원 모으기는 불가능한 현실로 보인다. 사정이 이런데도 ‘24년 동안 가계부를 써서 20억원대 자산가가 됐다’는 사람을 봤다. ‘살람의 신’ 녹화 현장에서다. 서울 송파구에 사는 김미숙(49)씨다. 산수를 좋아했을 뿐 회계를 따로 배운 적도 없다는 전업주부 김씨는 결혼 직후부터 지금까지 10원 단위까지 빼놓지 않고 가계의 수입·지출을 관리해 왔다 한다. 길에서 주은 100원짜리 동전 하나까지도 모두 수입으로 처리하고 기록했단다. 기록에 그친 게 아니라 매달 수입·지출 결산까지 했다는 김씨는 ”수중에 돈이 어떻게 들어오고 얼마나 빠져 나가는지 알아야 저축이든 투자든 할 수 있다. 가계부를 꼼꼼하게 쓰는 건 무조건 아끼자는 게 아니다. 허투루 쓰는 돈은 최대한 줄이고 쓸 데 더 현명하게 쓰고 모을 곳에 더 많이 모으자는 취지”라고 했다. 10원 단위까지 기록하는 꼼꼼함에 다른 출연자들은 혀를 내둘렀다. “저렇게까지 해야 하나” 회의적인 시선도 있었다. 하지만 김씨는 녹화에 참여하는 대여섯 시간 내내 자신감에 차 있었고 무엇이 즐거운지 연신 싱글벙글이었다. 개그우먼 이경애씨가 한마디 거들었다. “(열심히 가계부 써서 마련한) 건물만 봐도 즐거우시죠.”

누구든 가계부만 쓴다고 다 김씨 같은 자산가 대열에 들 순 없다. 그래도 김씨를 보니 꼼꼼하고 근면한 생활습관, 기본적인 태도의 중요성이 어느새 거창한 투자 계획 항목에서 빠진 것 아니었나 돌아보게 됐다. ‘근본 없는 대박’을 꿈꾸기 전에 기본기를 먼저 점검하는 것은 어떨지.

◆ 다음주 수요일(20일) 저녁 6시50분 JTBC 살림 정보 프로그램 ‘살림의 신’에선 절약 비법이 소개된다. 가계부 쓰기, 겨울철 난방비 줄이기 등 구체적인 절약 방법을 알아보는 시간이다. 섬유탈취제 한 가지만 잘 사용해서 겨울철 생활비 항목의 여러 부분을 줄이는 비법도 소개된다.

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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