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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를 보는 마음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한 국민교생이 목을 매어 죽었다. 그는 전에도 만화에선 죽었던 사람이 살아난다면서 두 차례나 죽는시늉을 하다 들킨 적까지 있었다 한다.
어린이들에게 있어 만화의 세계처럼 재미있는 것도 없다. 그들이 환상과 현실, 사실과 허구 사이를 가려내기에는 너무 이르다. 따라서 만화가 펼쳐주는 얘기는 아무리 황당한 것이라도 어린이들에게는 사실인 것처럼 느껴지기 쉽다.
어린이는 만화와 함께 자란다. 만화를 즐기는 한 시절이 누구에게나 꼭 있다. 만화가 중요한 까닭도 이런데 있다.
그러나 아무리 만화가 재미있어도 어린이가 글을 읽을 수 있게된 다음부터는 만화책을 버리고 동화의 세계를 찾게 되는게 보통이다. 그리고 이런 동화의 시기는 만화의 시기보다 더 길기 마련이다. 적어도 다른 나라 어린이들에게 있어서는 그렇다는 말이다.
그러나 불행히도 우리 어린이들에겐 동화의 시기가 거의 없다. 어느 골목에나 만화책 가게가 있고 언제나 만원이다. 그것도 만화책을 읽을 나이가 훨씬 지난 다 큰 어린이들로 말이다. 이번에 죽은 어린이도 12세 소년이었다.
그러면 왜 우리네 어린이들이 동화를 버리고 만화책 가게에 몰리게 되는 것일까. 꿈을 찾아서일까.
아무리 훌륭한 동화책이라도 어린이들의 꿈이나 정서를 키우는데는 그리 큰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니다. 동시에 꿈과 상상의 세계가 막힌 너무도 메마른 생활 속에 젖어 있을 때에는 동화의 세계도 그저 낯설기만 할 것이다.
따분한 학교, 놀이터 없는 동네, 그리고 가난과 불화로 마음놓고 동화 속의 환상의 날개를 타고 다닐 수 없는 메마른 집안…. 이런 것들이 어린이를 만화 가게에 몰리게 만들고 있는 것은 아닐까?
물론 불량 만화가 우선 문제되지 않을 수는 없다. 만화책만을 볼 수 있는 나이의 어린이들을 위해서 말이다. 그러나 그보다도 더 중요한 문제는 무엇이 어린이들을 만화책에만 묶여 있게 하는 것이다.
또 왜 한 소년이 죽었다가 되살아나려 했겠는가 하는 사실에도 머리를 돌려야 할 것 같다.
단순한 어린이의 영웅 심리에서만은 같기 때문이 결코 아니었던 것 같기 때문이다.
동화나 만화책에서는 죽었다 되살아나면 모든게 좋아진다. 적어도 달라지는 것은 있어야 한다. 이걸 그는 바랐던 것이 아닐까?
그는 또 죽기 전에 달력의 31일이 보기 싫다면서 31일자 달력을 찢었다 한다. 그것은 방학의 마지막 날짜인 것이다. 실상 문제의 핵심은 이런데 있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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