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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나무할아버지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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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이른 새벽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동산1 임업시험장 뒷산. 가죽잠바에 방한복 바지를 입은 할아버지가 관목의 숲을 헤치고 있었다. 제주도산 「단팔수나무」 밑에서 긴 대나무 막대기로 나뭇가지를 살살 흔들었다. 행여 가지가 다칠세라 자못 조심스럽다. 마침 잔가지에 얹힌 눈송이가 떨어진다. 지난밤 눈이 왔기 때문이다. 「비자나무」 「눈잣나무」 「거제수」 「백량금」등 차례로 야트막한 산등성이를 넘자 할아버지의 잔등위엔 눈이 소복이 쌓였다. 임업시험장 조림과 고문 김이만 옹(72)은 간밤에 잠을 설쳤다. 오랜만에 잔뜩 찌푸린 하늘에서 금방 함박눈이 쏟아질 것 같아 마음이 놓이지 않았던 것. 연약한 나뭇가지는 쌓인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해 부러지기도 하고 찬물이 껍질 속으로 스며들면 동사하는 수도 있다.
나무밖에 모르고 살아온 70평생이었다. 김옹은 슬하의 자식 3형제의 생일을 모른다. 아내가 고맙기는 하다. 그러나 산이 좋고 나무가 더 사랑스럽단다. 선 자리에서 한 발짝도 옮기지 못하는 나무를 닮아서일까. 53년 동안이나 임업시험장에서만 일해왔고 나무에 미쳐 방방곡곡을 헤맸다. 임업시험장안 13만5천여평에 심어진 8백60여종 2만여 그루의 나무 치고 김옹의 손길을 거치지 않은 것이 없다.
백두산기슭에서 「흰말차나무」묘목을 캐왔고 한라산에서 「꽝꽝나무」를, 설악 대청봉에서 「월귤」을 발견, 옮겨 심었다.
그래서 김옹은 「나무할아버지」라는 별난 별명도 가진 나무에 관한한 백과사전.
나뭇가지의 눈을 털어 준 김옹은 터덜거리는 지프에 몸을 싣고 1백여리나 떨어진 경기도 광릉 임업시험장으로 달려갔다. 야외월동을 시험하고 있는 난대식물 「편백」온상에서 짚 덮개를 점검하고 해발 4백m의 소리봉에 올랐다. 올해 따라 따뜻한 겨울이 계속되면 나무들이 철모르고 활동을 계속한다. 이러다가 늦추위가 닥치면 약간씩 움튼 싹이 얼어죽게 된다는 것. 김옹은 「고욤나무」 잔가지를 휘어잡아 눈을 살피고 가지 밑에 달린 벌레집을 떼어 구둣바닥으로 밟았다. 산을 타는 김옹은 노루처럼 날렵하다.
나무만 쳐다보면서 정신없이 더듬는다. 산길이 따로 없는 것. 만나면 기어오르고 도랑물에 첨벙한다. 70노인의 어디에서 정열이 솟을까. 나이테만큼이나 깊게 파진 얼굴 주름 속에 땀방울이 솟고 잔등에는 땀안개가 핀다.
김옹은 『사무실에 앉았으면 괜히 팔다리가 쑤셔. 이렇게 산을 타고나면 몸이 가뿐해진단 말야』하면서 별로 숨차하지도 않는다.
『나무할아버지』는 묘목채집으로 평생을 살았다.
해마다 봄·여름·가을 세 차례 채집여행을 떠난다.
29세 때 조랑말을 타고 백두산에 올랐고 낭림·묘부·금강산에 두 번씩, 태백·소백·오대·속리·설악·지리·한라산 등 전국의 험산에는 거의 해마다 올랐다.
평남 맹산에서 「댕강나무」를, 황해도 장수산에서 「장수만리화」를, 제주도에서 「불거리나무」를 찾아내 옮겨 심었다. 재작년 가을 설악산 대청봉에 올랐을 때 백두산기슭에서만 나는 것으로 알려진 「월귤」을 발견했다. 아무리 자라도 키가 5㎝가 넘지 않는다는 세계제일의 난쟁이나무. 응달쪽 수북이 쌓인 낙엽 속을 손으로 헤치다가 지름 2㎝의 「월귤」을 찾아냈다.
김옹은 30여 그루를 캐 비닐봉지에 싸 서울로 가져왔다. 임업시험장 뒷산에 심고 보살폈으나 모두 죽어버렸다.
지난가을에 또 10그루를 캐와서 이번에는 시험장안 가장 높은 곳에 심고 분무기로 물을 뿜어 안개를 만들어주는 등 자연환경에 가장 가깝게 만들어 주었다. 지금까지 죽진 않았으나 앞으로 습성을 알아내 대량 이식하는 것이 남은 과제다.
1931년 봄 김옹은 북한산에서 밤늦게 내려오다가 바위틈에서 미끄러졌다. 당황하여 나무포기를 움켜잡고 늘어졌다. 겨우 발을 디딘 김옹은 부러진 나뭇가지를 무심코 연구실로 가져갔다. 이 나무는 일본에서만 자라는 것으로 알려졌던 「조팝나무」였다. 해방되던 해에 전남 보길도에서 가지 없는 딸기나무를 발견, 「민등딸기」로 이름 붙였다. 66년 서귀포에서 지금까지 못 보던 상록수 한 그루를 발견했다. 서울농대 이창수 교수는 김옹의 이름을 따 「만년콩」으로 명명, 학계에 보고했다.
김옹은 지난 63년 정년 퇴직했으나 계속 임시직원으로 일하고 있다. 김옹이 퇴직한다니까 조원전문회사에서 많은 월급으로 유혹했으나 그는 마다했다. 평생 손길을 받은 나무를 버릴 수가 없었던 것. 시험장에서 받는 월급은 5만원.
김옹은 청량리동11520평짜리 기와집에서 4대째 살고 있다. 맏아들 윤수씨(49)는 성대생물학과, 둘째 광수씨(32)는 고대임학과를 졸업, 김옹에게 전문지식을 강의하기도 했으나 현재는 모두사업을 벌이고 있다. 김옹의 남은 소망은 아직까지 못 보던 나무를 찾는 일과 민둥산을 숲으로 덮이게 하는 것. <김재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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