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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근로자 상담역 9년 「산업목사」 조원송씨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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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목사님치고는 별난 목사님이다. 설교할 교회도 없고, 그렇다고 따로 회중을 갖고 있지도 않다. 그래도 조원송 목사(43·서울영등포구 영등포동 7가70)는 영등포공업지대에서 할 일이 너무 많은 목사님의 하나다.
공식직함은 도시산업선교연합회 총무. 원래 대한장로교 영락교회 소속 목사이나 산업선교사로 공장지대가 많은 영등포에 파견돼 있다. 벌써 9년째.
덮어놓고 『예수를 믿으라』기에 앞서 근로자의 권익 보호사업을 통해 설교를 대신한다. 말하자면 산업근로자의 「카운슬러」.
그 때문에 조 목사의 하는 일이란 꼭두새벽부터 바쁘다. 눈뜨는 시간은 아침 6시30분. 먼저 「라디오」의 「스위치」를 켜고 8시까지 각 방송국의 「뉴스」를 모두 듣는다. 특히 사회의 저변문제를 다루는 K방송의 「프로」 『제와어 오늘의 문제』는 빠뜨리지 않고 듣는다. 그사이 신문의 사회면 기사를 가위로 오려 문제별로 「스크랩」한다.
『때르릉…』 아침 첫 전화의 「벨」이 사무실에서 울렸다. 사무실이라야 안방에서 미닫이만 열면 그만.
『목사님이세요. 안녕히 주무셨어오. 오늘밤 「넝쿨회」는 몇 시에 열리죠?』 회원으로부터의 전화다. 「넝쿨회」란 H모방 여자종업원 10명으로 구성된 친목단체. 뜨개질 등 기술습득을 위해 조 목사가 앞장서 조직한 모임이다.
이같이 조 목사가 만든 모임은 영등포 공장지대에 40개. 청년근로자의 교양을 높이고 정신적 소외감을 덜어주기 위해 조직한 모임이란다. 회원은 4백여명.
아침을 들기 전에 잠시 책을 뒤적인다. 책이름은 『인간문화사회개발』. 독서시간이란 하루 중 이때뿐이다. 겨우 5, 6「페이지」읽을 따름.
9시45분쯤 미닫이를 열고 다시 사무실에 나간다. 말하자면 출근을 하는 것이다. 입는 옷이라야 1년 내내 작업복 차림. 사무실 비질을 한 다음 공장순방에 나선다.
구로동 E유지공장. 사무실에서 좌석 「버스」로 꼭 15분쯤 걸리는 곳이다. 정문수위가 조 목사를 수인사로 맞아주었다. 관리실의 한길수씨(36)를 만나기 위해서다. 한씨는 이미 공장 안에서 종업원 20명을 모아놓고 한문을 가르치고 있었다. 조 목사의 권고에 따라 오래 전부터 한문교육을 실시해온 것. 종업원들은 조 목사를 맞자 최근의 근로사정, 「클럽」이야기를 격의 없이 주고받았다.
조 목사의 다음 발길은 양남동 D모방. 평신도교육을 받는 창고과의 오태일씨(28)를 방문하기 위해서다. 오씨가 조 목사와 알게된 것은 2년 전. 우연한 기회였지만 조 목사를 따랐다. 최근 이직한 종업원의 취직문제를 두고 서로 걱정을 했다.
이렇게 공장마다 돌아다니자면 몸이 열이라도 모자란다. 비오는 날 공장지대의 감탕밭길을 돌고 나면 허기마저 진다. 밤에는 「클럽」의 모임.
하룻저녁에 두 군데의 모임이 있는 날도 있다. 기술훈련·각 노조원의 상담에서 가정사·개인의 연애문제에 이르기까지 조 목사가 상담하고 처리할 일은 끝이 없다. 종업원들의 이력서를 써주고 몇 달 전에는 모방직공장 여직공이 낳은 사생아를 어린애 없는 가정에 안겨주기도 했다.
밤10시쯤 돼야 조 목사는 1남1녀의 가장으로 집 겸 사무실로 돌아온다.
영락교회에서 받는 월급은 6만7천원. 이 돈으로 네 식구의 생활비와 두 자녀의 교육비를 쓴다. 그가 산업선교에 뜻을 두게된 것은 신학교 4년 때인 60년7월, 세계적인 산업선교지도자 「헨리·D·존즈」 목사(65)의 설교를 듣고부터라고 했다. 신학교를 졸업하고는 매년 여름과 겨울 두 차례씩 탄광지대인 강원도 장성 도계 황지와 영등포 인천 등 공장지대를 다니며 신분을 감추고 노동생활을 겪으며 한국최초의 산업전도 목사가 됐다.
『하느님으로부터 부여받은 인간의 권리는 최소한 지켜져야 합니다.
근로자들의 권익을 침해하는 기업인이나 집단이 있을 때는 거기에 대결하는 것이 교회의 의무입니다」-그러나 그가 겪은 가장 큰 애로는 근로자들과 거리낌없이 만나는 일. 공장의 담과 문이 마치 교도소의 담처럼 너무 높다는 것이다.
그가 방문하는 공장만도 영등포관내에서 1백여개. 지금은 각 공장의 수위나 기업주와 낯이 익어 냉대는 받지 않는다지만 아직도 그를 잘 모르는 기업에서는 위험시하기 예사라 했다.
종교계에서는 『산업선교에 가담하는 목사는 교회에 충실하지 않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러나 조 목사는 『근로자를 위해 일하지 않는 교회가 근로자에게 무슨 말을 떳떳이 할 수 있겠느냐』고 항변이다. 퇴직금을 못 받는 근로자를 목격하고 그들과 함께 어려운 생활을 해보면 마음 속으로 한편이 되어주고 싶은 용기가 샘솟는다는 것. 그래서 날만 새면 근로자들이 일하는 공장의 문을 두드린다. <신성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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