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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대 공납금의 자율 규제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상식과 원리·원칙에 어긋남이 없는 행정은 법치 행정의 핵심적 요소라 해도 좋을 것이다. 특히 국가 백년대계라고 하는 교육에 관한 정책을 다루는 문교 행정에 있어서는 이 원리·원칙의 깍듯한 준수가 더욱 절실한 본질적 요청이라 할 수 있다.
이런 관점에서 우리는 지난 20일 문교 당국자가 발표한 사대 공납금의 자율 징수 허가 방침에 큰 관심을 표명하고 싶다. 왜냐하면 문교 당국자의 그 같은 방침이 만일 대학 교육 행정에서 가장 중요시되어야 할 대학의 자치 원칙을 존중하겠다는 의사에서 나온 원리·원칙에의 복귀를 뜻하는 것이라면, 이는 확실히 이 나라 문교 행정 전반의 획기적 전기가 될 수도 있겠기 때문이다.
종래 우리 나라에서는 비단 사대뿐만 아니라 국·공·사립을 막론하고 각급 학교의 공납금 문제가 매년 되풀이 논란되는 매우 심각한 사회 문제의 하나였다. 그런데도 지금까지 이러한 공납금의 기본적 성격에 대해서는 사회 일반은 물론 학교 및 문교 당국자조차도 별로 원칙론적인 구명을 해 보려고 하지 않았다.
물론, 까다로운 천착을 하지 않더라도 국·공립 학교 수업료의 성격은 비교적 분명하다. 즉 정부 예산의 세입 계정 항목에도 명시돼 있듯이, 그것은 교도를 이용하는 것처럼 국·공립의 「영조물」(그 시설과 서비스)의 이용자가 납부하는 일정한 액수의 「사용료」로서 그 액수는 그 영조물의 설립·운영자인 국가 또는 지방자치 단체가 법령 또는 조례로써 정하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사대 공납금의 기본적 성격은 이와는 판이한 것이다. 외국에서도 아직 정설은 없으나, 그것은 각 대학에서 행해지는 각종 교육적 서비스의 질과 정도에 상응해서 납부하는 상대적 요율이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 견해라 할 수 있다.
이러한 서비스의 본질에 대해서도 이를테면, 인적자원의 제련세, 위탁 가공세, 수송세 등 구구한 의견이 있으나, 사대 공납금의 성격은 요컨대 국립 대학의 경우처럼, 결코 일률적 책정이 불가능하다는 원칙을 잊어서는 안 된다. 질적으로보다 정선되고, 보다 충실한 서비스를 해줄 수 있는 대학과 그렇지 못한 대학의 공납금 액수에 있어서는 자연히 차등이 있게 마련이고, 또 그 책정이 전적으로 대학 당국과 학생 사이의 합의 절차를 거쳐 결정돼야 한다는 원리가 여기서부터 유래하는 것이다.
다만 여기서 우리는 이 같은 원칙의 채택으로써 초래하게 될 여러 현실적 문제들의 심각성을 과소 평가해서는 안될 것이다. 예컨대 대다수 학생의 과중한 학비 부담으로 인한 등록 불능 사태의 속출, 그리고 일부 사학 경영자들의 이상치부 현상 등은 확실히 두렵고 심각한 현실적인 우려일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 하더라도 건국 후 이미 25년, 일취월장하는 세계 학문·기술의 추세 속에서, 그러한 우려 때문에 언제까지나 우리의 사립 대학들을 현재와 같은 서당식 경영 상태로 방치고, 부조리한 관권 통제를 계속케 할 수는 없는 것이다.
때문에 우리는 이제 정부뿐만 아니라, 대학 문제에 관심을 가진 모든 양식 있는 인사들이 중지를 모아 전기한 모든 가능적 부작용들을 제거하고, 우리 사립 대학 전체의 획기적 발전을 가져 올 수 있는 온갖 현실적 방안을 모색해야 할 시점에 있다.
첫째, 장학 제도의 획기적인 확충을 통해 뛰어난 소질·능력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학비 때문에 대학 교육의 기회에서 배제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반수 이상의 대학생이 혜택을 입을 수 있도록 대학 자체의 기금뿐만 아니라, 국가 장학 제도의 대폭적인 확충이 이루어져야 하겠다.
둘째, 인적·물적 시설의 규모와 그 안에서 제공되는 교육적 서비스의 정도에 따라 몇몇 사립 대학들끼리 급별 연합체를 조직, 차등적인 공납금 정책을 세워야 하며, 또 그 예산을 공개하고, 학생 공납금의 교육 목적외 유용을 철저하게 규제할 수 있는 자체 감시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셋째, 장학 기금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학자금 때문에 등록을 할 수 없는 학생들을 위하여 통신 방송 대학 등 정규 코스 이외의 교육 기회가 마련되어야 하고, 대학 졸업 상이 없이도 실력에 따른 사회 진출이 반드시 보장되는 국가적 「레벨」의 인사 채용 원칙이 세워져야 할 것이다.
우리는 이번 문교 당국자가 표명한 사대 공납금 정책의 전환 시도를 환영하면서 사학뿐만 아니라 우리 나라 대학 교육 전체의 획기적 발전을 위해 이상 몇 가지 현실적 방안 등이 함께 진지하게 고려되기를 요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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