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10)즉결판사 10년-서울형사지법 최만행 부장판사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서울형사지법 즉결과. 세상에 태어나 궂은 일 저지를 때 한번씩 들러보는 곳이다. 언제나 봐도지린내 같은 퀴퀴한 냄새가 나는 법정, 햇빛마저 잘 들지 않아 어두컴컴하다.
상오10시. 담당 최만행 부장판사(58)가 들어서면 정리의 『기립』구호와 함께 하루의 치안재판이 시작된다. 「택시」운전사 암표 상 윤락여성 무전취식자 등등…. 법정을 꽉 메운 경범피의자들에게 최 판사의 얼굴은 낯익다.
그는 즉결심판만 벌써 10년9개월째 맡아왔기 때문이다. 머리도 어느덧 희끗희끗해졌고 요 몇 해들어 돋보기를 썼다. 아침의 첫 법대 앞에 선 경범죄 처벌법 위반자는 절도우범자로 걸려온 김모군(19). 『좌석「버스」안에서 「핸드·백」을 든 여인의 돈을 훔치려 했나?』 『판사님, 전혀 그런 일없습니다.』 『그럼, 왜 여기와 있나?』 『저는 동대문시장에 있는 어머니를 만나러 가는 길이었습니다. 도둑질하려고 서성거린 일은 절대로 없습니다.』 -김군의 딱 잡아떼는 대답. 그러나 최 판사는 안경 너머로 김군을 노려보며 나직이 말했다.
『김군, 얼굴을 들고 나를 똑똑히 보게. 한달전 나는 김군을 본 일이 있는데‥ 그래도 거짓말 할 셈인가?』 최 판사의 말에 김군은 고개를 떨어뜨렸다. 『구류 5일. 판결에 불복한다면 7일 이내에 정식재판을 청구해. 』 -다음 차례의 재판으로 넘어갔다. 피의 사실은 한결같이 궂은 일 천지. 방뇨·고성방가에서 「공연히 주위사람에게 혐오감을 일으키게 한 자」에 이르기까지,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의 피의자 투성이다. 이런 피의자들을 경범죄 처벌법상 적시되어 있는 47종의 죄목을 적용, 마땅히 처벌하는 일이 최 판사의 일과. 재판치고는 구질구질하달 수밖에 없다. 상오 중 영등포관내의 즉결 3과에서 한바탕 재판을 치르면 점심. 작년까지만 해도 도시락을 들었으나 요즈음은 고혈압증세에 좋다고 해서 가까운 분식「센터」에서 메밀국수를 2개 든다. 금연에 금주, 취미라곤 일요일에 등산가는 것 뿐, 워낙 말이 없다. 하오에는 또 서대문구 응암동에 있는 즉결 2과에 출정, 관내 5개 경찰서에서 보내온 즉결 피의자를 심판한다.
이같은 즉결재판의 처리건수는 하루평균 4백여건. 행사처럼 흔한 일제단속 때는 야간재판을 하기가 일쑤이다. 천직으로 여기는 것일까, 말수가 적어 불만이 표현되지 않는 탓일까. 아무도 맡으려 하지 않는 즉결심판을 최 판사는 10년째 혼자서 맡아오고 있는 것이다.
공교롭게도 그는 이같은 「궂은 재판」을 자원해서 시작했다고 말했다. 그의 고향은 함남 북청. 일제 때 함흥지방 검찰국에 근무하다 해방되면서 월남, 법관특별임용고시에 합격되어 판사로 임관됐다. 즉결재판을 도맡은 것은 61년4월11일. 지금은 서울형사지법 관내의 즉결판사가 2명으로 1명 증원된 셈이지만 작년까지만 해도 최 판사 혼자서 줄곧 5백50만 서울시민의 즉결심판을 도맡았다. 『고혈압 때문에 과중한 판결업무를 덜 해볼까 싶어 즉결을 자원했지요.』- 말수가 적은 대신 대답이 시원스러웠다. 그러나 자원한지 35일만에 5·16혁명이 일어났다. 하루아침에 조무라기 깡패·우범자들이 쑥밭소탕을 당하던 때였다.
일요일과 공휴일조차 없이 넘겨져 온 즉결피의자는 하루평균 1천건. 임시 파견된 2명의 판사와 함께 하루 최고 7천2백건을 처리한 기록이 있다고 했다. 사건 1건당 놀랍게도 18초로 처리한 셈. 그러자니 자연 양형도 저마다 다르고 거짓말 잘하는 상습법은 풀려 나가게 마련이라고 했다. 『아무리 구류기간이 짧고 과료나 벌금이 적은 즉결재판이라고 하지만 법관들이 계속 즉결재판을 외면하면 법질서의 한 모퉁이가 무너질게 아니냐.』 -그때 최 판사는 비로소 「작은 재판」의 권위가 크게 중요함을 느꼈다고 했다. 그때부터 최 판사는 시중 나들이를 자주 한다.
서울시내 양동 창신동 청계천일대의 사창가와 우범지대까지 샅샅이 둘러본다. 현실을 이해하기 위해서다. 증거조사를 일일이 할 필요가 없는 즉심이라 하더라도 현실을 너무나 오래 관찰하지 못하면 동떨어진 재판을 하기 쉽기 때문.
이런 나들이 때는 그에게서 재판을 받은 일이 있는 시민들이 쉽게 최 판사를 알아본다.「택시」운전사는 굳이 영감한테 어떻게 요금을 받겠느냐』며 「택시」요금을 안 받으려고도 하고 극장 앞의 암표상은 『본전에 드리겠다』며 반가와 하는 일을 겪는다고 했다.
『법의 냉엄함에 비해 인간은 훨씬 순진한 점이 있는 것으로 느껴진다』는 최 판사의 말. 최 판사의 봉급은 수당 합쳐 10여만원. 식구가 워낙 적어 생활은 어렵지 않은 편. 집에서는 늦게 둔 외아들 영씨(29)가 사업상 제주에 가있기 때문에 손자 성진군(6)을 데리고 자라는 모습에 유일의 낙을 삼는다고 부인 한영준씨(48)는 평생 법관을 천직으로 여길분』이라 했다. <김영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