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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사설

금리 인하, 요구해야만 들어주는 은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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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금리인하 요구권이 생긴 지 10년이 넘었다. 취업·이직·승진이나 연봉 상승 등으로 신용등급이 좋아지면 은행에 대출 금리를 낮춰달라고 요구할 수 있는 권리다. 신용대출에 한정되며 주택담보대출이나 국가의 학자금 대출에는 해당되지 않는다. 1년에 두 번 요구할 수 있고 연 0.6~1.3%포인트 인하 효과가 있다. 2002년 도입됐지만 아는 사람이 많지 않다. 은행들이 잘 알려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5년간 국내 18개 은행을 통틀어 이를 홍보한 건 달랑 46건뿐이었다. 그나마 홈페이지나 상품설명서에 한 줄 안내하는 데 그쳤다. 하나·씨티·대구·수출입은행은 한 차례도 홍보하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2007~2011년 5년간 요구권 행사는 3710건에 그쳤다.

 확 달라진 건 올해부터다. 올 들어 8월까지 금리인하 요구권 행사는 5만3012건에 달했다. 고객들은 총 2129억원의 이자를 아꼈다. 지난해 7월 금감원이 은행들에 금리인하 요구권 공지를 의무화하면서 생긴 변화다. 그제야 고객들이 모르고 있던 자기 권리를 찾아나선 셈이다. 이런 작은 고객서비스도 금융당국이 나서야 해결되는 게 국내 은행의 수준이라니 한심하기 짝이 없다. 뒤늦게 정신차렸다지만 10년 넘도록 고객 권리 훼손을 방치한 금감원도 부끄러워해야 한다.

 그간 은행들은 ‘비 올 때 우산 뺏는다’는 비난을 받아왔다. ‘은행만 잘 살자’는 식의 영업 때문이다. 금리 상승기 때 대출 금리는 즉각 올리면서 예금 금리는 늦게 올려 빈축을 산 게 어제오늘 일인가. 연체 이자는 하루만 늦어도 연 20% 안팎의 고금리를 물리면서 미리 대출금을 갚았다고 깎아주진 않는다.

 선진 은행들은 다르다. 캐나다 은행들은 신용등급이 오른 고객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금리인하 대상이란 사실을 알려준다고 한다. ‘고객과 같이 잘 살자’가 체질화돼 있다. 길게 보면 그게 은행 경쟁력에 도움이 된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한국 금융도 달라져야 한다. 고객 감동, 선진 금융이 말로만 외친다고 저절로 되나. 은행에 불리하지만 고객에게 유리한 걸 적극 알리는 것부터 실천해야 한다. 금리인하 요구권은 그 작은 시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