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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공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빈 터에는 죽은 꿈만이 휴지처럼 쌓이고
탑 둘레를 돌며 춤추는 나비여
싼 임금, 나쁜 노동조건 속에
스스로의 손금을 털고
햇빛과 바람의 교직에 파묻힌다.
또 하나의 설계를 풀어낸다.
벽돌에 그려진
이슬 젖은 날개가 파닥인다.
바람의 빈껍질이 쓰러져있는 공사장의 빈터,
햇빛은
지푸라기를 밟고 뛰어 다니고
꽃불처럼 따가운 사랑에 눈 떠
치자빛 저고리를 받혀 입은 나비여.
일찌기 청사진에 담긴
타의의 설계라 하더라도
철근이 숲처럼 들어선 공사장에 날아와 앉은 나비여,
흰 적삼인 채 시선을 떨며
손이 부르트도록 일하고
발 아래에 깔린 가난과 풍요의
절대치를 굽어보면서
본능만이 잡초처럼 우거진 일상과 싸운다.
모래를 퍼 올리고, 자갈을 쏟아 넣고, 시멘트를 풀어
벽돌을 찍어낸다.
물을 뿌려서 햇볕에 내어 말린다.
하루의 노동이 끝나면
하루의 생활도
찬 달빛 속에 얼굴을 묻고 흐느끼는
이 슬픈 전신이여.
그러나, 오늘 기공의 하늘 높이 펄럭이는 깃발.
은모래로 찍어내는 한장씩의 벽돌에 물을 뿌린다.
삽 끝에 파헤쳐진 피리조각과
선녀들의 옷자락이 너울거린다.
온종일 물을 긷던 샘에서
솟아오르는 칠보의 활이여.
봄 아지랑이를 잉태했던 신혼의 단란은
알 수 없는 소리의 톱날에 잘려 아프더라도
나락의 깊은 골짜기를 빠져 나와
한장씩 가로질러 쌓아올린
벽돌의 어느 모서리에서
사랑이 싹트기도 하는,
불완전하나 지순하게 다가오는 탑
기와 올린 지붕들 날개를 펴고
햇빛 속에서 헤엄쳐 올 때.

<입선소감>서툰 이야기
어항 속에 하늘 한 폭이 담겨 있구나. 맨발벗은 소녀가 춤을 추고 있는 것을…생각한단다. 짧은 외출을 만들며, 어느 길목에선가 문득 스치고 온 고궁의 벽돌담과 시내「버스」와 휴지조각이, 그리고 흰눈이 펑펑 쏟아지는 이맘때쯤 언 손을 호호 녹이면서 팽이를 치고있는 시골어린이들이 나의 꿈을 흔들어 댄단다.
참으로, 참으로 아름다운 일들이 뼈 속까지 밀물져서, 뗏목을 타고 흔들린다. 어떻게 손을 써야 할텐데, 왜 석고처럼 슬픈 선율을 퉁겨야 할까. 하나씩의 시어에 입김을 불어넣으며 참으로 착한 생명으로 태어나기를 안간힘 하는 소치는, 문득 꿈에서 얻은 「이미지」를 통하여 사물에 새로이 접근케 되는 싹이 되는 것일까 하는 생각이다. 서툰 생활인데, 저의 습작을 뽑아주신 선생님들과 부모님께 감사함을 드린다.

<약력> ▲1949년 전남광주출생▲전남여고졸업 ▲성신여사대 국어교육과 3년 재학 중▲주소=서울성북구 동선동 5가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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